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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수일기, 계획표만 그럴듯했던 날들

책읽기 프로젝트 매니저 2026. 8. 13. 09:51

목차


    계획표만 더 그럴듯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제대로 해보려고 짠 거였어요. 월요일부터는 좀 다르게 해보자 싶어서 아침에 뭘 하고, 몇 시부터 뭘 하고, 저녁에는 부족한 걸 보충하고 이런 식으로 꽤 자세하게 적었어요. 그걸 적고 있으면 뭔가 벌써 하루를 제대로 살고 있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런데 며칠 지나면 꼭 하나씩 틀어졌어요. 늦게 일어나기도 하고, 해야 할 걸 못 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어요. 그러면 그냥 밀린 걸 하면 되는데 저는 또 계획표를 새로 짰어요. 이번에는 시간을 조금 바꿔보고, 순서도 바꿔보고, 지난번보다 더 촘촘하게 적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긴데, 계획을 다시 짜는 동안에는 제가 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해야 할 일을 한 건 아닌데도요.

    그러다 보니 계획표는 점점 그럴듯해지는데 정작 제가 그 계획표를 따라가는 시간은 별로 늘지 않았어요. 오히려 계획을 못 지켰다는 생각이 들면 하루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겼고요.

    《나의 삼수일기》를 읽으면서 그 부분이 좀 찔렸어요. 삼수라는 큰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이상하게 저는 제 계획표가 먼저 생각났어요. 내가 뭘 못해서 힘들었던 순간보다,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만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던 순간들이요.

    사실 계획을 세우는 건 어렵지 않잖아요. 다시 시작하는 것도 말로는 쉬운데, 막상 계획에서 한 번 벗어나면 그때부터 마음이 이상하게 꼬이더라고요. 저는 그걸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좀 오래 들여다본 것 같아요.

    1 — 계획표만 그럴듯해진 날들

    계획을 짜는 동안에는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상하게 계획표를 펼쳐놓고 있으면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오늘 해야 할 일을 아직 하나도 안 했는데도, 일단 적어놓으면 시작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계획이 틀어지면 그걸 다시 고치는 데 시간을 많이 썼어요.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고, 오전에 못 했으면 오후에 넣고, 또 밀리면 다음 날로 넘기고요.

    그런데 그렇게 계속 바꾸다 보면 어느 순간 계획표만 되게 그럴듯해져 있어요. 제가 실제로 한 것보다 계획표에 적힌 게 훨씬 많았어요.

    《나의 삼수일기》를 읽으면서도 처음에는 그냥 삼수를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삼수라는 게 아무래도 공부를 세 번 도전한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읽다 보니까 꼭 삼수를 해본 사람만 겪는 이야기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뭔가 하나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비슷하게 흔들린 적이 있었고, 계획을 세우고도 그 계획대로 못 했던 날들이 있었으니까요.

    특히 계획을 다시 짜는 게 실제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게 좀 찔렸어요. 계획표를 고치고 있으면 적어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시간에 그냥 하나라도 했으면 됐어요. 계획표를 그렇게 예쁘게 고칠 필요도 없었고요.

    사실 저는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 계획한 걸 실제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 그때는 잘 구분을 못 했던 것 같아요.


    2 — 6시간 날린 것보다 한 번도 안 다시 시작한 것

    기억나는 날이 하나 있어요. 오전에 하려고 했던 일을 놓친 날이었는데, 오후 1시쯤부터 그냥 마음을 놔버렸어요.

    원래라면 늦었더라도 그때부터 하면 됐는데, 이미 계획이 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좀 아닌 것 같다' 하고 넘겼어요. 밥도 먹고, 휴대폰도 보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시간이 계속 지나갔고요.

    정신 차려보니까 저녁 7시쯤이었어요.

    계산해보면 6시간을 그냥 날린 거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6시간이 아까운 것보다 더 아까운 게 있었어요. 그 6시간 동안 한 번도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오후 2시에도 할 수 있었고, 4시에도 할 수 있었고, 6시에도 할 수 있었어요. 30분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계속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까'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때 이상하게 하루를 한 덩어리로 봤던 것 같아요. 아침에 계획대로 못 했으면 그날 전체가 틀어진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한 부분이 틀어진 건데 하루 전체가 실패한 것처럼 만들어버린 거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저녁이 되면 마음이 더 불편했어요. 아무것도 안 해서 편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시 시작하지도 못하고요. 그냥 '내일은 제대로 해야지'라는 생각만 하고 잤어요.

    그런 날이 한 번이면 괜찮은데, 이런 식으로 넘기다 보면 또 다음 날 계획을 새로 세우게 되더라고요.

    《나의 삼수일기》를 읽으면서 그날이 생각났던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목표를 향해 계속 가는 사람도 매일 똑같이 독하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삼수라고 하면 왠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부터 떠올렸는데, 실제 사람은 그렇게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기 싫은 날도 있고, 계획이 틀어지는 날도 있고,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6시간을 날린 것보다 그 중간에 한 번도 다시 시작하지 않았던 게 아직도 더 아까워요.


    3 — 삼수, 시간이 나만 멈춰 있는 느낌

    삼수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처음에 좀 독하게 공부했을 것 같다는 생각부터 했어요. 몇 년 동안 같은 시험을 준비한다는 게 아무래도 그렇게 보이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인데 매일 공부하고 싶을 수는 없잖아요. 하기 싫은 날도 있을 거고,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 싶은 날도 있을 거고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생각이 들 수도 있고요.

    저는 오히려 공부 자체보다 시간이 나만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더 힘들겠다 싶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계속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나는 같은 목표를 계속 보고 있는 거잖아요. 누군가는 대학에 가고, 누군가는 취업을 하고, 또 누군가는 자기 생활을 만들어가는데 나는 아직 여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겠다는 거죠.

    그게 한두 달이면 모르겠는데 시간이 길어지면 생각도 많아질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다른 사람들은 저만큼 갔는데 나는 왜 아직 여기 있지.'

    이런 생각이 계속 생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단순히 삼수를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책으로 읽지는 않았어요. 사람이 한 가지 목표를 오래 붙잡고 있을 때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그냥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목표가 점점 부담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기도 애매하고, 계속하기도 힘들고.

    저도 뭔가를 오래 붙잡아본 적이 있으니까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목표만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목표보다 시간이 더 크게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삼수라는 경험을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있는 마음까지 완전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4 — 결과 안 나와서 조급한 사람한테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제가 얼마나 자주 '다음에 하지'라는 말을 했는지도 생각하게 됐어요.

    그 말 자체는 별거 아닌 것 같아요. 오늘 못 했으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못 하면 다음에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그게 반복되면 좀 달라지더라고요.

    저도 예전에는 오전에 하려고 했던 걸 놓치면 그냥 다음 날로 넘겼어요. 그런데 요즘은 오후 3시라도 시간이 되면 그냥 하려고 해요. 아침에 못 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요.

    물론 이것도 매번 되는 건 아니에요. 또 미루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하루를 보내기도 해요. 다만 예전처럼 '오늘은 망했으니까 내일부터'라는 생각으로 쉽게 넘어가지는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결과가 안 나와서 조급한 사람한테 이 책을 권하고 싶어요.

    특히 남들보다 늦어진 것 같아서 마음이 급한 사람요.

    뭔가를 오래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하나씩 앞으로 가는 것 같고, 나는 아직 같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이 책을 읽으면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은 조금 들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을 읽고 갑자기 부지런해진 건 아니에요. 계획표를 안 만드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미루기도 해요.

    다만 예전보다 하나는 조금 달라졌어요.

    아침에 놓쳤다고 저녁까지 기다리지는 않으려고 해요.

    오후 3시라도 할 수 있으면 그냥 해요.

    그게 대단한 변화는 아닌데, 저한테는 그게 생각보다 오래 남더라고요.

     

     

    오전에 놓쳤어도 오후 3시라도 그냥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물론 지금도 계획대로 못 하는 날은 있어요. 예전처럼 또 미루기도 하고, '내일부터 하지 뭐'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생각이 들면 일단 그날 할 수 있는 것 하나는 하려고 해요.

    계획을 다시 완벽하게 짜는 것보다, 오후 3시라도 그냥 시작하는 쪽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