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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장례식 (관계의 의미, 삶의 태도, 현실적 한계)

by 책읽기 프로젝트 매니저 2026. 5. 15.

나의 완벽한 장례식




솔직히 이 책을 처음 집어든 건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완벽한 장례식"이라는 말이 어딘가 도발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죽음을 준비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었고, 그 낯섦이 오히려 손을 뻗게 만들었습니다. 조현선의 [나의 완벽한 장례식]은 종합병원 장례식장 근처 작은 매점을 배경으로,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는데, 그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죽음 준비가 아니라, 관계의 의미를 되묻는 이야기

제가 직접 읽어보니 이 소설은 죽음을 '사건'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임종, 즉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사람들이 무엇을 떠올리는지에 집중합니다. 여기서 임종이란 단순히 숨이 끊어지는 생물학적 순간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 전체를 되돌아보게 되는 심리적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족에게 사과 한마디 못 한 채 떠난 사람,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한 사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얼굴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집니다. 저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평소 연락 한 번 제대로 못했던 가족의 얼굴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작품이 인상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서사 구조에 있습니다.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들이 찾아와 마지막 소원을 전하고, 주인공이 그것을 하나씩 들어주는 방식인데, 이를 문학 이론에서는 초자연적 사실주의라고 부릅니다. 초자연적 사실주의란 현실적인 배경 위에 비현실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 넣어, 독자가 이질감 없이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기법입니다. 이 기법 덕분에 죽음이라는 소재가 공포가 아닌 따뜻한 대화처럼 읽힙니다.

실제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한 연구들이 있습니다. 호주의 완화의료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임종 환자들을 돌보며 수집한 사례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더 솔직하게 살지 못한 것"과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출처: Bronnie Ware 공식 사이트). 소설 속 인물들의 후회와 정확히 겹치는 지점이었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관계의 의미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아래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 살아 있을 때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결국 후회로 남는다
  •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성공이나 재산이 아닌, 사람을 떠올린다
  • 관계는 화려하게 쌓는 것이 아니라, 소소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삶의 태도를 바꾸는 소설, 그리고 현실적인 한계

그럼에도 제 경험상 이 소설이 마냥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읽는 내내 좋았지만,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조금 복잡했습니다.

작가는 웰다잉 서사를 굉장히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여기서 웰다잉이란 죽음을 단순히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주변과 화해하며 마무리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웰다잉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건수가 2022년 기준 150만 건을 넘어섰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본인이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치료 여부를 미리 결정해 두는 문서입니다. 이처럼 실제 사회에서도 죽음을 준비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문제의식은 시의적절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마지막에 어느 정도 감정이 정리되고, 용서와 화해를 향해 나아갑니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어떤 죽음은 너무 갑작스럽고, 남겨진 사람들은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합니다. 그 지점에서 소설이 죽음을 지나치게 서정적으로 포장한 면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리얼리즘, 즉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방식이 문학의 전부는 아닙니다. 리얼리즘이란 이상화나 과장 없이 실제 삶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문학적 태도를 말하는데, 이 소설은 그보다는 독자에게 위로와 성찰을 건네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선택을 탓하기보다는, 독자가 그 온기를 현실에 어떻게 연결할지를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실제로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래 연락 못 했던 지인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거창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잘 지내냐고, 한 줄이었습니다. 소설이 준 가장 작고 실질적인 변화였습니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은 완벽한 마지막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아직 말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입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삶의 태도를 건드리는 소설이 많지 않은데, 이 작품은 그것을 조용하고 담백하게 해냅니다.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책 한 권이 생각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소설은 그런 책입니다.

참고: Bronnie Ware 공식 사이트(https://bronnieware.com/), 보건복지부(www.mohw.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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