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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이 사람을 구한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그 믿음이 얼마나 단순한 것인지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시 펼쳤을 때 그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1978년 작품이 지금의 제 일상과 이토록 겹쳐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성장은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이었을까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습니다. 숫자는 정확하지만, 숫자가 담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연평균 10%에 육박했습니다(출처: 통계청). 교과서에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렀던 그 시기입니다. 공장이 들어서고, 도시가 팽창하고, 수출이 늘었습니다. 그 숫자만 보면 전 국민이 함께 잘살게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 숫자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도시 재개발이 진행될 때마다 낙후 주거지에 살던 사람들은 철거 통보를 받았고, 작품 속 '난쟁이' 가족도 그렇게 삶의 터전을 잃어갑니다. 이 소설이 단순한 빈곤 서사로 읽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가난을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라 구조적 소외(structural exclusion)의 결과로 그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구조적 소외란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사회 시스템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주변부로 밀어내는 현상을 뜻합니다.
제가 직접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고등학생 때와 지금 다시 읽었을 때의 감상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읽혔는데, 경영학을 공부하고 현장 관리 업무를 경험한 뒤에는 '시스템이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같은 문장인데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산업화가 지워버린 것들 — 상징으로 읽는 작품
제가 예전에 오래된 공장 건물을 철거하는 현장을 관리한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 건물 안을 돌아다니다 벽 한쪽에서 직원들이 수년간 남긴 낙서를 발견했습니다. "첫 월급 받던 날", "퇴직까지 100일" 같은 짧은 메모들이었습니다. 관리 담당자 입장에서는 도색해야 할 벽면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공간이 누군가의 인생 기록처럼 보였습니다. 며칠 뒤 그 벽은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시 읽으며 그 장면이 겹쳤습니다. 작품 속 상징들은 그냥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로 지워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졌습니다.
'난장이'는 사회적 약자를 표상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키가 작아서가 아니라, 사회가 그의 목소리를 작게 만들어 놓았기에 난장이입니다. '달나라'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 인간이 찾게 되는 도피처이자 이상향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희망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먼 곳, 그래서 더 슬픈 상징입니다. '굴뚝'은 산업화와 노동의 상징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의 생존을 떠받치면서도 그 가족의 삶을 옭아매는 구조물로 작품 안에서 반복됩니다.
'작은 공'이라는 제목의 상징도 단일한 의미로 좁히면 놓치는 것이 많습니다. 쏘아 올린다는 동작에는 절망 속에서도 무언가를 향해 던지는 행위, 즉 포기하지 않는 마지막 몸짓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작아도 공은 올라갑니다. 그 방향이 달나라라는 사실이 더 가슴을 조여옵니다.
이렇게 겹겹이 쌓인 상징들을 해독하는 작업이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졌는데, 제 경험 속 장면들과 대입해 보니 오히려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가 됐습니다. 문학적 상징이란 결국 언어로 담기 어려운 실제 감각을 우회해서 전달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난장이: 사회 구조 안에서 목소리가 지워진 존재, 소외된 인간의 표상
- 달나라: 현실 너머의 이상향이자 도피의 공간 —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상징
- 굴뚝: 산업화와 노동의 상징, 생존을 위한 구조이자 삶을 옭아매는 구조물
- 작은 공: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지막 의지, 인간다운 삶을 향한 열망
- 철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는 삶의 기억과 공동체
데이터가 지우는 사람 — 오늘날의 인간 소외
경영학에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는 원칙을 자주 가르칩니다. 실용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원칙이 극단으로 흐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오늘날 기업은 고객을 데이터로 관리합니다. '20대 남성', '이탈 가능 고객', 'VIP 세그먼트'처럼 사람을 분류 코드로 압축합니다. 이것을 고객 세분화(customer segmentat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고객 세분화란 마케팅 효율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 집단을 특성별로 나누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분석 효율 면에서는 유용하지만, 그 순간 한 사람의 맥락, 관계, 기억은 코드 안에서 사라집니다.
1970년대 철거 계획서에서 사람들이 '이주 대상' 항목으로 존재했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형식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사람을 설명하는 언어가 너무 단순해질 때 그 사람의 실제 삶은 지워집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예상했던 방향의 독서가 아니었습니다. 고전 소설을 읽으면서 현재 업무에서 쓰는 데이터 분석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2023년 기준 전체 임금 노동자의 38%를 넘어섰습니다(출처: 한국노동연구원). 숫자는 정확하지만, 그 38% 안에 담긴 각 개인의 삶은 통계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세희가 50년 전에 던진 질문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성장의 수혜는 누가 받고, 그 비용은 누가 치르는가.
오늘날의 인간 소외는 굴뚝 연기 대신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 구조는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이 소설이 과거를 기록한 텍스트가 아니라 현재를 진단하는 도구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작품의 한계와 그럼에도 남는 것
명작이라고 해서 모든 독자에게 동일하게 가닿는 것은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 소설은 읽는 시점과 삶의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그것 자체가 이 소설의 깊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연작소설(serial novel) 형식이라는 점이 첫 번째 허들입니다. 연작소설이란 독립된 단편들이 공통된 인물, 주제, 세계관으로 연결된 소설 형식을 말합니다. 각 이야기가 따로 읽혀도 되지만, 전체 맥락 안에서 읽을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가 드러납니다. 처음 읽는 독자라면 시간 순서와 시점이 뒤섞이는 구성에서 당혹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저는 이 작품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담고 있지만, '그렇다면 어떤 사회여야 하는가'에 대한 상상은 상대적으로 열어두지 않는다는 점을 아쉽게 생각했습니다. 비판의 언어는 강렬하지만, 대안적 상상의 언어는 독자에게 거의 전적으로 위임됩니다. 이것을 열린 결말의 미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허탈함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계속 읽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문장 하나가 보여주듯, 이 작품은 사회적 보호와 관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감각을 언어로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여기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사회가 한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보호하는 최소한의 시선을 의미합니다. 그 시선을 받지 못한 삶이 어떤 것인지, 이 소설은 담담하게 그러나 오래 남도록 보여줍니다.
저는 공간이 사라지는 장면을 실제로 지켜본 이후, "건물이 없어졌다"는 느낌보다 "누군가의 시간이 없어졌다"는 감각을 훨씬 강하게 받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야 그 감각에 언어가 붙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을 이유는 충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소설인가요, 단편집인가요?
A. 엄밀히는 연작소설입니다. 독립된 단편들이 공통된 인물과 주제로 연결된 구조로, 각 이야기는 따로 읽힐 수도 있지만 전체를 순서대로 읽을 때 의미가 훨씬 풍부해집니다. 단편집처럼 분산된 구성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작품 해설이나 작가 소개를 먼저 읽고 시작하는 것을 권합니다.
Q. '작은 공'이 의미하는 게 정확히 뭔가요?
A. 단일한 정답은 없습니다. 희망, 꿈,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 절망 속 마지막 의지 등 복합적인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중요한 것은 '쏘아 올린다'는 동작에 담긴 의지입니다. 아무리 작은 공이라도 위를 향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이 완전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Q. 이 소설이 지금도 필독서로 꼽히는 이유가 뭔가요?
A. 배경은 1970년대지만 다루는 문제들 — 주거 불안, 빈부격차, 노동 소외, 계층 이동의 어려움 — 이 형태만 바뀌었을 뿐 현재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자료 기준으로 비정규직 비중이 38%를 넘는 지금, 이 소설이 과거 기록이 아니라 현재 진단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Q. 처음 읽는 독자에게 어렵지 않을까요?
A. 상징과 은유가 많고 시점이 자주 바뀌어서 처음에는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다만 시대적 배경 — 1970년대 도시 재개발과 산업화 — 을 먼저 간략히 파악하고 읽으면 훨씬 수월합니다. 제 경험상 한 번에 전부 이해하려 하기보다, 모르는 채로 일단 완독한 뒤 다시 읽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결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저에게 가난을 다룬 소설로 남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숫자로 바꾸는 순간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경고하는 소설로 기억됩니다. 성장률, 개발 면적, 이주 세대 수 — 그 숫자 뒤에 있는 삶을 함께 보려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 진짜 발전이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한 번 읽고 끝내기보다 삶의 국면이 바뀔 때마다 다시 꺼내 읽을 만한 책입니다. 공간 관리 현장에서, 경영학 수업에서, 혹은 뉴스에서 재개발 기사를 볼 때마다 이 소설의 문장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게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ChatGPT (Open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