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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책은 읽었어요.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도 몇 군데 표시해놨고, 나중에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내용도 메모해뒀어요. 그래서 나는 당연히 글을 금방 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니까 이상하게 손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냥 오늘 컨디션이 별로인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글을 쓰기 싫었던 것보다, 글을 쓰기 전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제목도 정해야 하고, 어떤 순서로 쓸지도 생각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도 조금 봐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책을 읽고 글 하나 쓰는 일이 생각보다 커져 있었어요.
결국 그날은 메모만 다시 보고 컴퓨터를 닫았어요. 책까지 읽어놓고 글 한 줄 못 썼다는 게 좀 허무했어요.
1 — 책 읽고 메모까지 했는데 글 한 줄 못 쓴 날
책도 읽고 메모도 했는데 글 한 줄 못 쓴 날이 있었다. 책을 안 읽은 것도 아니고, 쓸 내용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을 꽤 적어놨어요. 그래서 나는 그날 책 리뷰 하나 정도는 당연히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쓰려고 앉으니까 '오늘 책 읽고 글 하나 써보자'가 아니라 '제대로 쓰려면 이것부터 정리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으로 바뀌더라고요. 메모를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고, 어떤 내용부터 꺼내야 할지도 생각해야 하고, 제목도 정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시간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어요. 처음에는 준비를 조금만 하고 쓰려고 했는데, 하나를 정리하면 또 다른 게 눈에 들어왔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준비만 하고 있는 거죠.
이런 일이 한 번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책은 계속 읽었는데 이상하게 글로 넘어가는 데서 자꾸 멈췄어요. 지금 생각하면 책 한 권 읽고 리뷰 하나 쓰는 걸 내가 너무 많은 일로 만들어놨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내가 읽고 느낀 걸 적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뭔가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2 — 리뷰 찾아보고 제목 고민하다 시작이 더 늦어졌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도 찾아보게 됐어요. 처음에는 참고하려고 본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보면 내가 놓친 게 있을 수도 있고, 글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몇 개 읽고 나면 도움을 받는 느낌보다 다른 생각이 더 많이 생겼어요. '나는 이렇게 쓰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붙기 시작했거든요. 다른 사람 글은 잘 정리돼 있는데 나는 아직 메모만 덩그러니 있으니까 괜히 비교하게 되고요.
제목도 그랬어요. 글을 써보지도 않았는데 제목부터 괜찮게 지으려고 했어요. 제목을 먼저 정해놓으면 글을 쓰기 편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반대였어요. 제목을 고민하다가 글을 못 쓰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제목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작하기 전에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준비 중에 없어도 되는 게 꽤 많았어요. 다른 리뷰를 꼭 먼저 볼 필요도 없었고, 제목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정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메모해둔 것 중에서 하나를 꺼내서 써봤으면 됐던 거죠.
그런데 나는 그걸 몰랐던 게 아니라, 알면서도 계속 준비를 붙였던 것 같아요. 준비하고 있으면 뭔가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 헷갈렸어요.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 곧 시작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계속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리워크》를 읽으면서 그 부분이 좀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나는 일을 꼼꼼하게 준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순간에는 그 준비가 일을 돕는 게 아니라 일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3 — 요즘은 기억에 남는 장면부터 적는다
요즘은 그냥 책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부터 적어봐요. 예전처럼 '리뷰를 쓰려면 먼저 이것부터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길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책을 읽다가 내가 멈칫했던 부분이나, 읽고 나서 계속 생각나는 장면이 있으면 일단 그걸 적어요.
그게 문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도 그냥 적어봅니다. 나중에 보면 별 내용 아닐 수도 있고, 쓰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지울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일단 적어놓으면 그다음 생각이 이어질 때가 있더라고요.
특히 '이것까지 준비해야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요즘은 한 번 멈춰요. 정말 필요한 건지, 아니면 내가 시작하기 싫어서 하나씩 만들어내고 있는 건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사실 그냥 쓰면 됐던 거예요.
그런데 나는 쓰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계속 만들고 있었어요. 제목도 준비해야 하고, 다른 글도 봐야 하고, 메모도 정리해야 하고, 순서도 잡아야 하고. 하나씩 보면 별거 아닌데 그게 쌓이니까 결국 글 한 줄 쓰는 것보다 준비하는 게 더 큰 일이 되어버렸어요.
지금도 가끔 또 그렇게 돼요. 뭔가 하려고 하면 이것저것 먼저 갖춰놓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그래서 완전히 고쳤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예전과 다른 건,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잠깐, 내가 지금 또 일을 키우고 있는 건가?' 하고 한 번은 돌아본다는 거예요.
사실 그냥 쓰면 됐는데, 쓰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계속 만들고 있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뭔가 시작하려다가 준비할 게 자꾸 늘어나면,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봐요. 아직도 완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예전처럼 준비만 하다가 하루를 보내는 건 조금 줄어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