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는 말이라도 관계를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꽤 많았습니다. 내용은 틀리지 않았는데 상대가 기분 나빠하거나, 좋은 의도로 한 말이 오히려 거리를 만들어버린 순간들 김민성 작가의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를 읽으면서 그 이유를 비로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수직적 조직문화에서 배운 것
제가 다니던 회사는 보고 체계가 매우 명확한 곳이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지시가 내려오는 전형적인 탑다운 의사결정 구조였습니다. 여기서 탑다운이란 경영진이나 상위 직급자가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방향대로 하위 구성원이 실행하는 방식으로,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구조에서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말투였습니다. "이거 오늘까지 해주세요"가 아니라 "이거 오늘까지 해", 또는 "왜 아직도 안 됐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습니다. 내용은 같은 업무 지시인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의 온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감정이 위축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업무 능률보다 감정 소모가 먼저 시작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환경에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보다 점점 방어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이를 심리적 안전감 부족이라고 표현합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도 처벌받거나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팀 성과와 직결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글이 수년간의 내부 연구를 통해 고성과 팀의 공통 요소로 꼽은 것도 바로 이 심리적 안전감이었습니다(출처: Google re:Work).
말투는 조직 분위기를 만들고, 그 분위기는 사람의 행동 방식을 바꿉니다. 그걸 몸으로 먼저 알게 된 것이 저에게는 꽤 오래 남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공감대화가 왜 '기술'인가
"그럴 수도 있지", "그때 많이 힘들었겠다" 같은 말이 왜 관계를 지켜주는지, 저는 오랫동안 잘 몰랐습니다. 그냥 착한 말 정도로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착함과는 다른 문제였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심리학에서는 이를 적극적 경청이라고 부릅니다. 적극적 경청이란 상대의 말을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의도까지 파악하려는 의식적인 태도를 가리킵니다. 반박을 참는 것, 표정으로 반응하는 것, 말을 끊지 않는 것이 모두 이 범주에 해당합니다. 이 개념은 미국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인간 중심 치료 이론에서 출발했으며, 이후 조직 커뮤니케이션 분야에도 폭넓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가족 관계에서 이 차이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사춘기 자녀에게 "왜 그랬어?"라고 물으면 대화가 닫히고,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으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용은 비슷한 질문인데 상대가 느끼는 온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아내에게 제 의견을 전달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맞는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먼저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아야 그 말이 실제로 전달된다는 것을 솔직히 꽤 늦게 배웠습니다.
좋은 말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공감 표현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렇게 느꼈구나" — 감정을 먼저 인정하는 표현
-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었을까요?" — 추궁이 아닌 이해를 묻는 질문
-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나요?" — 비난 없이 상황을 파악하는 방식
- "내가 너무 몰아붙였네" — 먼저 자기 언어로 관계를 회복하는 표현
이 표현들이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관계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역할은 충분히 합니다. 저는 그 차이가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투 변화가 조직과 관계를 바꾼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하면서 직급 호칭 대신 '님' 또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유행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는 언어적 평등화의 시도입니다. 언어적 평등화란 호칭이나 말투를 통해 위계적 거리를 줄이고 구성원 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려는 조직적 접근 방식입니다. 호칭이 바뀌면 말투가 달라지고, 말투가 달라지면 의사소통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실제로 국내 기업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조직문화 연구에서도, 수평적 소통 환경이 구성원의 직무만족도와 조직 몰입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다만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경계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말투만 바꾼다고 모든 관계가 좋아진다는 식의 접근은 조금 단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배려 있는 말로 대화해도 소통 자체가 어려운 사람이 존재하고, 구조적인 문제나 가치관의 차이가 말투만으로 좁혀지지 않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의 내용을 "착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관계의 균열을 최소화하는 현실적인 전략"으로 읽었습니다. 그 관점으로 보면 훨씬 실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말투는 결국 그 사람이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냅니다. 직장에서는 리더십이 되고, 가정에서는 신뢰가 됩니다.
관계가 자꾸 어긋난다는 느낌이 든다면, 먼저 최근 자신이 썼던 말투를 떠올려보시길 권합니다. 내용보다 온도를 먼저 점검하는 것,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 (Google re:Work), (한국직업능력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