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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그러진 만화 리뷰, 괜찮은 척하던 날
낮에는 괜찮습니다 했는데 집에 오니 그 말이 제일 먼저 무너진 겁니다.
그날 일이 특별히 잘못된 건 아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고, 사람들을 만나서 평소처럼 이야기했습니다. 누가 봐도 크게 이상한 날은 아니었을 겁니다.
저도 계속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니까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저녁 7시쯤 집에 들어왔는데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한참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밥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배달음식도 시켰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와도 바로 먹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결국 8시 반이 넘어서야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한 시간 반 동안 뭘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TV를 켜놓은 것도 아니고, 뭔가 특별한 생각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멍하게 있었습니다.
그때 조금 이상했습니다.
낮에는 분명 괜찮다고 했는데, 집에 오니까 그 괜찮다는 말부터 없어졌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저는 피곤해도 그냥 피곤한 척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일이 힘들어도 괜찮다고 하고, 약속이 있으면 나가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했습니다.
그게 나한테는 그냥 평소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망그러진 만화』를 읽고 나니까 그날 소파에 앉아 있던 모습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나는 왜 꼭 괜찮은 상태여야만 하루를 제대로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날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었는데, 그걸 그냥 피곤한 날이라고 두지 못하고 자꾸 괜찮은 상태로 돌려놓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날의 한 시간 반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다릅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데 생각보다 꽤 오래 걸렸습니다.
1 — 저녁 7시에 들어와 8시 반에 밥 먹은 날
그날을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그렇게까지 지쳐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무슨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배가 고프니까 배달음식을 시키기는 했는데, 막상 음식이 오니까 그것마저 먹으러 가는 게 귀찮았습니다.
그냥 소파에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또 뭔가를 했을 것 같습니다. 샤워라도 하고, 운동을 못 했으면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책을 못 읽었으면 몇 장이라도 읽으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그런 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제가 게으른 건가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피곤하다는 말을 잘 안 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괜찮다고 했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낮에는 괜찮다고 해놓고 집에 와서는 한 시간 반 동안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게 책을 읽고 나서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망그러진 만화』 속 모습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냥 망그러진 채로 있는 모습이 웃겼고, 그게 저한테는 묘하게 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날 소파에 앉아 있던 제가 떠올랐습니다.
굳이 그 시간을 실패한 시간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밥을 늦게 먹은 것도 맞고,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날 제가 잘못된 상태였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많이 지친 날이었고, 그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날의 한 시간 반이 전처럼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2 — 망그러진 만화가 찌른 것, 쉬는 것도 잘해야 했다
생각해보면 저는 쉬는 것까지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게 좀 이상한 말인데, 실제로 그랬습니다.
운동을 쉬면 그냥 쉬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늘 운동을 못 했다고 생각했고, 책을 안 읽으면 오늘 독서를 못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으면 쉬었다는 생각보다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쉬는 시간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누워 있으면서도 "이제 뭐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잠깐 쉬고 다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끝나면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망그러진 만화』를 읽으면서 그런 제 모습이 조금 우스워졌습니다.
책 속에서는 뭔가 제대로 되지 않아도 그냥 그 상태로 있습니다. 실수하면 실수한 대로 있고, 귀찮으면 귀찮은 대로 있고, 힘들면 힘든 모습도 그대로 보입니다.
그걸 보면서 저도 굳이 모든 순간을 제대로 만들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특히 그날처럼 집에 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더 그랬습니다.
예전 같으면 "오늘 아무것도 안 했네"라고 생각했을 텐데,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오늘 좀 쉬었네" 정도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말만 놓고 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꽤 달랐습니다.
"아무것도 안 했다"에는 이상하게 죄책감이 붙었습니다. 반면에 "좀 쉬었다"라고 생각하면 그 시간도 나한테 필요했던 시간이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매번 그렇게 생각되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쉬고 있으면 괜히 불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처럼 그 불안 때문에 바로 일어나서 뭔가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조금 더 누워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별일 없이 괜찮아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나는 쉬는 것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구나.
3 —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내가 보내는 시간
지금도 집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 예전처럼 무조건 뭔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소파에 앉아 있기도 하고, 잠깐 누워 있기도 합니다. 휴대폰을 보다가 내려놓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천장을 보고 있기도 합니다.
그 시간이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러고 있으면 불안했을 겁니다.
"오늘 이렇게 보내도 되나?"
"이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었는데."
아마 이런 생각을 계속했을 겁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아예 안 드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생각이 들어도 꼭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그냥 피곤하면 피곤한 채로 조금 있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가장 달라진 부분입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내가 보내는 시간이라는 것 정도는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뭔가를 만들어내거나 끝내야만 시간이 지나간 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앞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합니다. 운동할 날에는 운동하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합니다.
다만 아무것도 못 한 시간이 생겼다고 해서 그날 전체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하루를 꽉 채우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비어 있는 시간도 그냥 비어 있는 채로 둘 수 있게 됐습니다.
특히 피곤한 날에는 더 그렇습니다.
"오늘 아무것도 안 했네"라고 생각하다가도 잠깐 멈춥니다.
그리고 "오늘 좀 쉬었네"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적어도 나를 또 몰아붙이지는 않게 됩니다.
그 정도면 저한테는 꽤 큰 변화입니다.
"요즘 지쳤으면 한번 읽어봐. 나도 그때 읽으니까 좀 다르더라."
특히 쉬고 있는데도 괜히 불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를 실패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나도 그때는 그냥 웃긴 만화라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서는 가끔 망그러진 채로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조금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