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가 일자리를 빼앗을까 봐 걱정하면서도 정작 더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것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를 읽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책은 인구감소라는 거대한 변화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조각조각 바꿔놓는지, 경상북도 의성군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통해 보여줍니다.
인구감소, 숫자가 아니라 관계의 붕괴
인구감소를 출생률(합계출산율) 문제로만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합계출산율이란 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를 의미하는데,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기준 0.72명으로 전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출처: 통계청). 이 숫자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심각하다"라고 말하고는 다음 날이면 잊어버립니다. 저 역시 한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의성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학생이 줄어 학교가 폐교되고, 학교가 사라지면 학원도 문구점도 따라 없어집니다. 그러면 젊은 부모들이 떠나고, 사람이 빠지면 가게가 닫히고, 가게가 줄어들면 불편해진 사람들이 또 떠납니다. 이 순환이 한번 시작되면 자체적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솔직히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망(social network)의 붕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실감 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관계망이란 사람들 사이의 연결과 교류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이것이 무너지면 경제활동과 문화가 동시에 위축됩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지금껏 인구증가를 전제로 설계되어 왔다고 지적합니다. 학교도, 아파트도, 기업의 성장 모델도, 심지어 국가 재정 계획도 사람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가정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 전제가 무너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그 전제 위에서 정책을 짜고 있습니다.
인구감소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주요 영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학교 및 교육 인프라 축소로 젊은 가구 이탈 가속화
- 상권 붕괴 → 생활 불편 → 추가 인구 유출의 악순환 심화
- 지역 커뮤니티(공동체 조직) 해체로 사회적 고립 증가
- 지방세수 감소에 따른 행정서비스 질 저하
지방소멸의 현장에서 읽힌 AI 시대의 그림자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겹쳐 보인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AI입니다. 책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저는 계속 두 개의 풍경이 포개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방소멸과 AI의 확산, 둘 다 처음엔 느리다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버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요즘 AI에 대한 두려움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반기를 드는 시나리오, 다른 하나는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공포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터미네이터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일자리도 우리가 필사적으로 방어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 방어 과정에서 조용히 부서지는 것들입니다. 저자가 의성에서 발견한 것처럼, 무너지는 건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관계이고 문화이고 삶의 질감입니다.
실제로 노동시장에서는 이미 자동화 편향(automation bias)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자동화 편향이란 인간이 자동화된 시스템의 판단을 과신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줄여나가는 경향을 말합니다. 이 현상이 쌓이면 어느 순간 특정 판단 능력 자체가 사회에서 사라집니다. 의성에서 학원이 사라지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AI의 확산이 어떤 직군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분석도 이미 나와 있습니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GI)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약 3억 명의 일자리가 자동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추산한 바 있습니다(출처: McKinsey Global Institute). 물론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저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새 일자리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지금 당장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위로가 되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저자가 의성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사실은, 위기 속에서도 남아서 새 방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카페, 농업과 기술의 접목, 문화예술을 통한 지역 연결. 이것이 AI 시대에도 유효한 답의 방향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장 지표(growth index)에 잡히지 않는 삶의 방식을 새로 설계하는 것. 여기서 성장 지표란 GDP나 기업 매출처럼 양적 확대로 측정되는 수치를 말하는데, 인구가 줄고 AI가 확산되는 시대엔 이 지표만으로 '잘 사는 것'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감소하는 사회,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제가 느낀 감정은 해방감이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 AI에 올라타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는 메시지 속에서 정작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질문을 돌려줍니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흔히 환경 분야에서 쓰이지만, 여기선 사회 전체가 인구 감소라는 조건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그 해답이 외부 인구 유치보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고 봅니다. 저도 이 시각에 공감합니다. 지원금으로 사람을 끌어오는 건 결국 단기 처방입니다.
물론 탐욕과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세상이 작가의 의도대로 흘러가기엔 무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직접 살아보니 좋은 방향이 보여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개인은 그 구조 안에서 소진됩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전인류적 해법을 논하기 전에, 지금 내 옆의 공동체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먼저 보라는 메시지로 읽었습니다.
인구감소와 AI, 두 변화는 서로 다른 속도로 오고 있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성장 없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가치로 삼을 것인가. 그 질문이 불편하다면 <먼저 온 미래>에서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