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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행복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 책을 읽다가 문득 책에서 눈을 뗐습니다. 그리고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잠깐 멈췄습니다. 책을 읽고 있으니까 당연히 좋은 문장 하나를 찾아야 하고, 기억할 만한 내용을 남겨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제 생활에서 뭘 바꿔야 할지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행복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저는 계속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뭘 해야 하지?"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저를 보니까 조금 웃겼습니다. 행복도 결국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냥 책을 내려놓았습니다.

    잠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뭔가 대단한 생각이 떠오른 건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이 책에서 어떤 문장을 읽은 것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그때부터 이 책을 조금 다르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1 — 책을 집어 든 날, 퇴사 후 달라진 것들

    퇴사하고 나서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출근할 일이 없어졌으니까 당연히 전보다 여유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에도 조금 늦게 일어날 수 있고, 하루 중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생각처럼 편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많으니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더 자주 보게 됐습니다. 뭘 했는지 생각하고, 별로 한 게 없으면 괜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이상하게 저 자신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 행복했나?"

    처음에는 그냥 하루를 돌아보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질문도 또 하나의 검사가 된 것 같았습니다.

    오늘 행복했으면 잘 보낸 하루고, 행복하지 않았으면 뭔가 잘못 보낸 하루인 것처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행복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게 좀 이상했습니다.

    퇴사하고 시간이 많아진 건 맞는데, 그 시간을 편하게 보내고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날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제목도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좋은 말인데, 저는 그 말을 보면 또 "그럼 오늘도 행복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까 꼭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날이 있다고 해서 그날 전체가 실패한 건 아니니까요.

    그때부터 저는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먼저 행복한지를 검사하고 있었던 제 모습을 조금씩 보게 됐습니다.

    2 — 편의점 가다 걷고 온 날

    어느 날 저녁에 편의점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냥 필요한 걸 하나 사려고 나간 거였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편의점에 갔다가 바로 집에 들어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물건을 사고 나오니까 집에 바로 들어가기가 조금 싫었습니다.

    딱히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누구를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니고, 어디 가야 할 곳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조금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참 걸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몇 분 만에 들어온 것도 아닙니다. 그냥 동네를 조금 돌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시간도 굳이 뭔가로 만들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뭐 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런데 그날은 그냥

    "오늘 저녁에 좀 걸었네."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게 이상하게 편했습니다.

    행복했다고 말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기분이 엄청 좋아진 것도 아니고, 걷다가 특별한 걸 본 것도 아닙니다.

    그냥 편의점에 갔다가 조금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굳이 좋은 일로 포장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반대로 별것 아닌 일이라고 해서 의미 없는 시간으로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그날 저녁에 제가 걸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도 비슷했습니다.

    저는 별것 없는 날을 너무 빨리 나쁜 날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일이 꼬이면 하루가 별로였다고 생각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오늘은 망쳤다고 생각하고, 특별히 좋은 일이 없으면 그냥 평범한 날이 아니라 재미없는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루가 그렇게 한 가지 감정으로만 지나가는 건 아니었습니다.

    별로인 순간도 있고 괜찮은 순간도 있고, 아무 생각 없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날 편의점에 다녀와서 조금 걸었던 것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와서 굳이 "오늘은 행복했어"라고 결론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오늘 저녁에 좀 걸었네."

    그 정도면 됐습니다.

    3 — 책 읽고 나서 달라진 것, 딱 하나

    책을 다 읽고 나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뭐가 달라진 건가 싶었습니다. 예전처럼 기분이 안 좋은 날도 있고,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까 딱 하나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하루를 평가하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습니다.

    예전에는 무슨 일이 하나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하루 전체를 판단했습니다.

    아침에 기분이 안 좋으면 오늘 하루가 별로인 것 같았고, 계획했던 일을 못 하면 오늘은 잘못 보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끔 그 순간에서 한번 멈춥니다.

    "오늘 하루가 별로인 건가, 지금 이 순간만 별로인 건가."

    이렇게 나눠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저한테는 꽤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오후에 일이 하나 꼬였다고 해서 그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부 나쁜 날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냥 지금 기분이 안 좋은 거고, 지금 이 일이 마음에 안 드는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기분이 풀리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그 전에 이미 "오늘은 별로인 날"이라고 결론을 내버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런 날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봤는데 별로 한 것도 없고, 특별히 기분 좋은 일도 없고, 그냥 평범하게 지나간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 예전 같으면 괜히 아쉬워했을 텐데 요즘은 그냥 그런 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별일 없는 날을 괜히 실패한 하루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뭔가 있어야 했고, 잘한 게 있어야 했고, 기분 좋은 일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루를 잘 보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편의점에 갔다가 조금 걸어온 날처럼 그냥 지나간 하루도 있습니다.

    그날을 굳이 행복한 날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나쁜 날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날은 그렇게 지나간 겁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저한테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준 책이라기보다, 제가 하루를 너무 빨리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한번 보게 만든 책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별일 없는 날이면 가끔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가 별로인 건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만 별로인 건가."

    예전보다 그 질문을 조금 천천히 하게 됐습니다.

     

     

    별일 없는 날을 괜히 실패한 하루처럼 느끼는 사람한테 권하고 싶다.

    요즘은 특별한 일이 없었던 날에도 예전처럼 하루 전체를 아쉽다고 결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별일 없이 지나간 날이면, 그날은 그렇게 보낸 하루였다고 두고 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