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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리뷰 (비교, 능력주의, 기준)

by 책읽기 프로젝트 매니저 2026. 6. 8.

불안

 

 

솔직히 저는 군대에 있을 때가 왜 그렇게 마음이 편했는지 오랫동안 몰랐습니다. 제대 후 사회에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으면서, 그 이유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불안도 줄어든다는 것, 그게 핵심이었습니다.

비교가 사라진 2년

저는 20대에 2년간 군 생활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체력적으로는 분명 힘든 시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습니다. 제대 후 한참 지나서야 그 이유를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는 모두가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잡니다. 사회에서의 배경, 즉 부모님의 재산이나 출신 학교 같은 것들이 거의 의미를 잃습니다. 계급 차이는 있지만 그것은 복무 기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기준이라 지금처럼 경쟁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교의 축 자체가 단순해지니, 불안할 이유도 줄어들었던 겁니다.

일반적으로 불안은 가진 것이 부족해서 생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군대에서는 물질적으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시피 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했습니다. 반면 사회에 나와 월급이 생기고 생활이 나아지면서 오히려 불안은 커졌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가 시작되면서부터였습니다.

여기서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절대적인 상황이 아니라 비교 대상과의 차이에서 느끼는 결핍감을 의미합니다. 실제 생활은 나아졌어도, 주변이 더 빠르게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면 오히려 더 초라하게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제가 제대 후 실제로 경험한 감정이 정확히 이것이었습니다.

능력주의가 만든 불안

<불안>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잡아 둔 부분은 능력주의(meritocracy)에 대한 분석이었습니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성취가 결정된다는 사회 원리입니다. 겉으로 보면 공정하고 희망적인 개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지점에서 솔직히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능력주의가 강조될수록,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환경이나 구조가 아니라 순전히 자기 자신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실패의 책임이 오롯이 개인에게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결과의 실패를 존재 자체의 실패처럼 느끼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이 압박은 매우 구체적으로 작동합니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층(19~34세)의 취업 준비 기간이 평균 11.5개월에 달했습니다(출처: 통계청). 이 숫자 뒤에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늦어지는 취업이 곧 자신의 무능함이라는 자기 낙인(self-stigma) 문제가 겹쳐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 낙인이란 사회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불안을 구조화하는 주요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능력주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사회 구조
  • 상대적 박탈감: 절대적 상황과 무관하게 비교에서 발생하는 결핍 감정
  • 성공 편향 노출: 언론과 SNS가 성공 사례만 반복 노출해 평균적 삶을 실패로 인식하게 만드는 현상
  • 자기 낙인: 사회 기준 미달을 자신의 존재 가치 문제로 확장하는 심리

가만히 있으면 불안합니다. 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그 감정의 정체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도 이 책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능력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만성적인 자기 검열이었습니다.

비교의 기준을 바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준거 기준(reference point)을 바꾸는 것을 제안합니다. 준거 기준이란 자신의 상태를 평가할 때 비교의 기준으로 삼는 지점을 말합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기준을 타인에게 두고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휴대폰을 열면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가고, 누군가는 새 차를 샀다는 소식이 넘쳐납니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그 질문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불안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비교의 고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SNS 이용 빈도가 높을수록 사회 비교 성향이 강해지고 이것이 우울과 불안 지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제 경험과 정확히 맞닿는 결과였습니다.

결국 책이 말하는 핵심은 이겁니다. 성공의 기준을 타인이 아닌 어제의 자신에게 두라는 것.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집을 원하는 감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시선을 위한 것이 되는 순간, 그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더 높은 사람을 보면 또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철학과 예술이 왜 불안에 도움이 되는지도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그것들은 경쟁의 언어가 아니라 공감의 언어로 인간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느끼는 불안이 나만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 오래전부터 함께 겪어온 감정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불안을 없애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흔들리게 됩니다. <불안>을 읽고 난 뒤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비교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어도, 어떤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볼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지금 막연히 불안하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통계청,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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