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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하려다 '별일 없겠어' 하고 내려놓은 순간이 책 읽다가 계속 생각남
어느 날 아버지한테 전화하려다가 '별일 없겠어' 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어요. 일주일 넘게 연락을 안 한 상태였는데, 사실 특별히 싸운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연락할 일이 없었어요.
그때는 정말 별생각이 없었어요. 아버지도 별일 없이 지내실 거라고 생각했고, 굳이 할 말도 없는데 전화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그런데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을 읽다가 그때 휴대폰을 내려놓았던 장면이 자꾸 생각났어요.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때는 왜 전화를 안 했을까 싶더라고요. 연락할 이유가 없다는 걸, 어느 순간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연락 안 한 이유, 알고 보니 이유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던 건 '왜 그때 전화를 안 했지?'였어요. 사실 아버지한테 연락하지 않을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바쁜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그냥 별일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는 그동안 연락할 이유가 없다는 걸 연락하지 않을 이유로 쓰고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용건이 있어야 전화를 했어요. 물어볼 게 있거나, 필요한 게 있거나, 명절이나 생일처럼 자연스럽게 연락할 이유가 있을 때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아무 일도 없으면 굳이 전화하지 않았어요.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그전에는 별로 안 했어요. 아버지도 나도 각자 생활이 있고, 매일 연락할 필요까지야 있나 싶었거든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까 꼭 연락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나 싶더라고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으니까 전화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생각났으니까 전화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사실 전화해서 특별한 얘기를 할 것도 없어요. 막상 통화하면 밥 먹었냐, 뭐 하고 있냐 정도 얘기하다가 끝날 텐데, 나는 그 짧은 통화에도 자꾸 이유를 붙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참 웃겨요. 전화 한 통 하는 데도 이렇게 이유를 만들고 있었으니까요.
책이 남긴 감각, 평범한 순간이 나중엔 아닐 수도
책을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건 어떤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순간들이 나중에는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감각이었어요.
그 말이 처음부터 크게 다가온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한테 전화하려다가 내려놓았던 장면이 계속 떠오르니까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어요.
그때의 나는 그냥 다음에 전화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안 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못 하면 며칠 뒤에 하면 되고요.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왔고요.
그런데 평범한 하루라는 게 계속 똑같이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렇다고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매일 걱정하면서 살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요.
그냥 지금 생각났을 때 한 번 전화하는 정도면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요즘은 아버지한테 전화할 때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목소리 한번 듣는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통화 내용은 별거 없어요. 몇 분 얘기하고 끊는 게 대부분이에요.
예전 같으면 '이렇게 할 말도 없는데 왜 전화했지?'라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꼭 할 말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목소리 듣고,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내시는구나 확인하고, 나도 별일 없이 지내고 있다고 얘기하고 끊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전화하는 게 편해졌어요.
책 덮고 5분, 그게 전부였다
결국 책을 다 읽고 그날 바로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사실 전화하기 전까지도 잠깐 망설였어요. '갑자기 전화하면 뭐라고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그냥 걸었어요.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시고 처음 하신 말이 "왜?"였어요. 그래서 저도 잠깐 생각하다가 그냥 "생각나서."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별다른 반응은 없었어요. 평소처럼 밥 먹었냐고 물어보시고, 요즘 뭐 하냐고 물어보시고, 날씨 얘기도 조금 했어요. 정말 특별한 얘기는 없었어요.
그렇게 한 5분 정도 통화하다가 끊었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내가 며칠 동안 미뤘던 게 사실 이거였구나 싶더라고요.
5분이면 되는 일이었어요.
전화하기 전에는 괜히 큰일처럼 느껴졌어요. 할 말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았고, 바쁜데 괜히 전화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그냥 5분 동안 서로 목소리 듣고 끝나는 일이었어요.
그게 조금 허무하기도 했어요. 나는 왜 그동안 그렇게 미뤘을까 싶어서요.
그 뒤로도 아버지한테 매일 전화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바쁘면 며칠 지나갈 때가 있어요. 그래도 예전처럼 '연락할 일이 없으니까 나중에 하지'라고 바로 넘기지는 않게 됐어요.
가끔 생각나면 그냥 전화해요. 그리고 전화해서 할 말이 없으면 그냥 없는 대로 있어요. 굳이 무슨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하지도 않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날 책을 덮고 한 행동은 정말 별것 아니었어요. 그냥 전화 한 통 한 거니까요. 그런데 나한테는 그 5분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어요.
전화하기 전에는 그렇게 미루던 일이었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5분이면 되는 일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아버지가 생각나면 무슨 용건이 있는지부터 찾지 않고 그냥 전화를 해요. 할 말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잠깐 얘기하고 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