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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나를 설명하던 문장이 사라졌다

책읽기 프로젝트 매니저 2026. 8. 5. 19:18

목차


    나를 설명해주는 익숙한 문장이 사라졌다

    나를 설명해주는 익숙한 문장이 사라졌다.

    회사를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 느낌이 가장 크게 왔다. 예전에는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회사 이름과 내가 맡았던 일을 말하면 됐다. 그러면 상대방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이해했다.

    그런데 회사를 나오니까 그 한 문장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그냥 회사를 그만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해온 경험이나 능력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허전한지 잘 몰랐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잃어버린 건 일이 아니라 나를 설명해주던 익숙한 틀이었다.

    사실 회사를 다닐 때는 그 부분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출근하고, 맡은 업무를 하고, 월급을 받고, 경력을 쌓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설명은 항상 있었다.

    그런데 그 설명이 없어지니까 생각보다 마음이 흔들렸다.

    특히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뭐 해?"라는 말을 들을 때가 그랬다. 상대방은 그냥 안부로 물어본 건데, 그때의 나에게는 뭔가 다른 질문처럼 들렸다. "그래서 지금 너는 어떤 사람인데?"라고 묻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직 나 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떤 날은 정말 잠깐이지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한 생각이었다. 회사라는 소속이 없어졌다고 해서 내가 가진 경험이나 배운 것들이 사라지는 건 아닌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쉽게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다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이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책에서는 인간이 단순히 현실에 존재하는 것만 믿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믿는 이야기와 기준 속에서 살아간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부분을 읽는데 회사라는 것도, 직업이라는 것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기준도 한번 생각하게 됐다.

    나는 그동안 '어느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가 나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줬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설명하기도 쉽게 해줬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끝난 순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지금도 아직 완성된 답을 찾은 건 아니다. 창업을 준비하고 있고, 공부도 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한 문장으로 나를 설명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있다.

    이제는 익숙한 문장이 사라졌다고 해서 내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됐다. 오히려 내가 앞으로 어떤 문장을 만들어갈지 고민하는 과정에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사피엔스 읽고 나서, 나를 설명하던 문장이 사라졌다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가장 오래 생각했던 부분은 인간이 자신이 믿는 이야기를 통해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인류의 역사나 문명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까 오히려 내 이야기를 돌아보게 됐다.

    특히 회사를 나온 뒤 느꼈던 이상한 감정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회사를 그만두면 힘든 부분은 있어도, 내가 해온 경험이나 능력은 그대로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내가 몇 년 동안 일하면서 배운 것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는 조금 달랐다.

    회사를 다닐 때는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면 됐다. 그 안에서 내가 맡은 역할도 있었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기준도 있었다.

    그런데 회사를 나오니까 그 한 문장이 없어졌다.

    처음에는 그게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 몰랐다. 그냥 직장을 옮기는 것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아무 소속이 없는 상태가 되니까 내가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어느 순간에는 정말 잠깐이지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조금 과한 생각이었다. 회사라는 이름 하나가 사라졌다고 해서 내가 가진 경험이나 능력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는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게 달랐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할 때 '무엇을 해왔는가'보다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봤던 것 같다.

    좋은 회사에 다닌다.
    몇 년 동안 이런 일을 했다.
    이런 경력이 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사피엔스』에서 말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부분이 그래서 크게 다가왔다. 회사라는 시스템도, 직업이라는 개념도, 성공이라는 기준도 결국 사람들이 함께 믿고 있는 하나의 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틀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여전히 돈도 중요하고, 가족을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예전에는 그 틀 안에 내가 들어가 있어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고 있다.

    틀이 나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가 나를 다시 설명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직 새로운 문장을 완성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하나의 이름이 사라졌다고 해서 나까지 사라진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게 됐다.


    퇴사 후 "요즘 뭐 해?" — 안부가 심문이 됐다

    회사를 나온 뒤 가장 기억에 남는 말 중 하나가 있다.

    "요즘 뭐 해?"

    사실 이 말 자체는 아무 의미 없는 안부였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그때의 나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마치 "그래서 지금 너는 어떤 사람인데?"라고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나 자신을 아직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라서 그 질문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예전에는 아주 간단했다.

    "회사 다녀."
    "이런 일 하고 있어."

    이렇게 말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퇴사 후에는 대답을 하면서도 내가 먼저 생각하게 됐다.

    "창업 준비하고 있어."

    이렇게 말하면 되는데, 말하고 나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설명을 길게 하게 됐다.

    공부하고 있고,
    이런 분야를 준비하고 있고,
    앞으로 이런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런데 사실 가장 큰 변화는 일이 없어진 게 아니었다.

    시간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퇴사하면 시간이 많아질 것 같았다. 출퇴근 시간이 없어지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훨씬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까 시간이 생긴 게 아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누군가 정해준 일정이 있었다. 해야 할 업무가 있었고, 마감 기한도 있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최소한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분명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까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다.

    공부를 할지,
    창업 준비를 할지,
    쉬어야 할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모든 선택이 내 몫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자유라는 것도 결국 책임이 따라온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를 보내는 기준을 조금씩 만들고 있다.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한다. 어떤 날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내버리는 날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누군가 만들어놓은 일정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시간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은 조금씩 느끼고 있다.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믿는 이야기를 따라 살아간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믿고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피엔스가 짚은 것, 2주 읽고 더 오래 생각했다

    『사피엔스』를 읽는 데는 약 2주 정도 걸렸다.

    책 자체가 가볍지는 않았다. 내용도 많았고, 그냥 빠르게 읽고 넘어가기에는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읽은 시간보다 읽고 난 뒤 생각한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특히 인간이 만들어낸 기준과 믿음에 대한 부분은 책장을 덮고 나서도 계속 생각났다.

    나는 그동안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 사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따라간 부분도 많았던 것 같다.

    좋은 직장.
    안정적인 수입.
    정해진 경력.
    나이에 맞는 위치.

    이런 것들이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를 나오고 나니까 그 기준들이 조금 흔들렸다.

    처음에는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건가 생각했다. 내가 더 능력이 있었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능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나를 설명해주던 익숙한 틀이 없어진 것이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능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다시 시작하는 게 두렵다. 내가 가진 것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틀이 없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달라진다. 기존의 방식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을 뿐, 내가 가진 경험이나 배운 것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창업을 준비하고, 경영학을 공부하고,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것도 결국 새로운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답을 찾은 건 아니다.

    가끔은 불안하고,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고민될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는 어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인가"로만 나를 판단하지는 않게 됐다.

    지금은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됐다.

    그래서 『사피엔스』는 나에게 인류의 역사를 알려준 책이라기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기준을 한번 의심하게 만든 책으로 남았다.

     

     

    능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 설명해주는 익숙한 틀이 없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처럼 나를 설명해줄 직함이나 소속을 찾기보다,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만들고 어떤 경험을 쌓을지에 집중하려고 한다. 아직 새로운 문장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지금부터 내가 직접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