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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달라진 건 없는데 기분만 지쳐 있었다

    달라진 건 없는데 기분만 지쳐 있었다.

    이 말은 책을 읽다가 든 생각이 아니라, 책을 다 읽고 일주일쯤 지난 저녁에 혼잣말처럼 나온 말이었습니다.

    회의를 하나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았는데 또 낮에 있었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예전처럼 "그때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조금만 다르게 설명했으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짧으면 30분, 길면 두세 시간까지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일이 저에게는 익숙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반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계속 돌아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회의도 끝났고, 상대방도 집에 갔고, 내일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 혼자만 계속 그 장면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나니까 남은 건 해결책이 아니라 지친 기분뿐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제 입에서 "달라진 건 없는데 기분만 지쳐 있었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가장 오래 남은 것도 바로 그 장면이었습니다. 책이 저에게 새로운 생각을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저는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1 — 두세 시간 기분만 지쳐있던 이유

    저는 예전부터 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으면 그냥 넘기기보다 한 번 더 돌아보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수했던 부분을 다시 생각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기 위해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같은 상황을 다시 생각하고 있는데, 다음에 더 잘할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이미 끝난 장면만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회의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회의가 끝난 순간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고 나면 조금씩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때 이 말을 먼저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처음에는 몇 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번 시작하면 생각보다 오래 갔습니다.

    짧으면 30분 정도였고, 길게 이어지는 날은 두세 시간도 그렇게 보냈습니다.

    신기한 건 그렇게 오래 생각한 뒤에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회의 내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다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분만 계속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끝난 일을 계속 붙잡고 있는 걸까.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이 부분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저는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계속 뒤를 보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는 시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돌아본 뒤에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냥 원래 제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제가 힘들었던 건 어떤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끝난 일을 계속 다시 꺼내 보고 있던 제 습관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 책 읽는 중보다 덮은 뒤, 물 한 잔과 산책

    사실 책을 읽는 순간 바로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문장을 읽고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정도였습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덮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평소처럼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날도 소파에 앉아서 계속 생각했을 겁니다.

    어떻게 말했어야 했는지, 어떤 표현이 더 좋았을지, 혼자 계속 정리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중간에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 지금 또 같은 장면을 보고 있네."

    그 순간 억지로 생각을 끊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하면 오히려 더 생각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물을 한 잔 마셨습니다.

    그리고 잠깐 밖에 나가 걸었습니다.

    특별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전과 다른 점은, 계속 그 생각 안에 앉아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조금 신기했습니다.

    생각을 없앤 게 아니라,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흐름에서 제가 먼저 빠져나온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머릿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답을 찾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였습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잠깐 걸었던 그 시간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저에게는 꽤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됐습니다.

    책을 읽고 달라진 건 거창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제 습관 하나를 알아차린 것이었습니다.

    3 — 생각이 나를 붙잡던 상태에서 내가 먼저 걸어나온 느낌

    그날 가장 크게 느낀 건 생각을 멈췄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생각은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으면 "그때는 어땠을까" 하고 돌아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생각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필요해서 다시 떠올리고,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까 반대였습니다.

    생각이 저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한 번 시작된 장면은 계속 이어졌고, 저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힘들었던 건 같은 장면을 계속 보는 것보다,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몸은 집에 와 있었는데 마음은 아직 회의실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생각하고, 씻으면서도 생각하고, 잠들기 전까지도 다시 그 상황을 꺼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제가 얻은 건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루가 끝났다는 느낌보다, 하루를 한 번 더 살아낸 느낌이었습니다.

    이미 끝난 일을 다시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었던 겁니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뀐 건 이 부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이 시작되면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어디까지 생각이 가나 보자"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간에 한 번 멈춰서 봅니다.

    "지금 내가 해결하려는 건가, 아니면 그냥 같은 장면을 다시 보고 있는 건가."

    이 질문 하나가 생겼습니다.

    그 질문을 한다고 해서 항상 멈출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날은 여전히 예전처럼 생각이 길어집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그 상태를 조금 빨리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게 생각보다 큰 변화였습니다.

    생각을 없애는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생각 속에 들어가 있다는 걸 알아보는 사람이 된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경험은 이렇게 남았습니다.

    생각이 저를 붙잡고 있던 상태에서, 제가 먼저 걸어나온 느낌.

    그 표현이 지금도 가장 정확하게 느껴집니다.

    4 — 책이 문장을 준 게 아니라 내 안의 문장을 꺼내줬다

    이 책에서 특별한 문장을 하나 골라보라고 하면 사실 쉽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기억에 남는 표현들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오래 남은 건 책 속 문장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고 일주일 뒤, 평소와 같은 상황에서 제 안에서 나온 한마디였습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기분만 또 지쳤네."

    이 말은 책에 있던 문장이 아닙니다.

    그날 제가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전까지는 제가 힘든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힘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의 말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같은 상황에서도 제가 그 일을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는지가 더 큰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책이 제 생각을 완전히 바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이미 가지고 있던 습관을 먼저 보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책을 읽으면 방법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구나."

    이런 방법들을 기억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방법을 기억한 게 아니라 제 습관을 기억하게 됐습니다.

    제가 언제 같은 생각을 반복하는지, 어떤 순간에 지나간 일을 다시 붙잡는지를 조금 더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저에게 답을 준 책이라기보다, 제가 모르고 있던 제 모습을 보여준 책에 가까웠습니다.

    예전에는 책을 읽고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하지 않던 것을 보게 됐습니다.

    이미 지나간 장면을 계속 붙잡고 있던 제 모습입니다.

    결국 이 책이 저에게 남긴 건 멋있는 문장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책이 문장을 준 게 아니라, 제 안에 이미 있던 문장을 꺼내준 느낌이었습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기분만 또 지쳤네."

    지금도 가끔 이런 순간이 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생각 안에서 몇 시간을 보내기 전에, 제가 먼저 알아차립니다.

    그게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가 저한테 남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같은 습관이 나올 때마다 한 번씩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뒤를 돌아보는 중인지, 아니면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건 아닌지를.

     

     

    책이 문장을 준 게 아니라 내 안의 문장을 꺼내줬다.

    예전처럼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지나간 일을 떠올리고 아쉬워하는 순간은 있지만, 이제는 그 생각 속에 오래 머물고 있는 제 모습을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한 번 물어봅니다.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생각인지, 아니면 그냥 다시 앞으로 가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