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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버틴 게 아니라 티를 안 냈던 거였다.

    이 생각이 든 건 오래 알고 지냈던 한 동료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눈 뒤였습니다.

    그 사람은 회사에서 항상 비슷한 모습이었어요. 일이 많아도 크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고, 누가 봐도 책임감 있고 멘탈이 좋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잘 넘기는 사람,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라고요.

    특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느 날 밤 9시가 넘어서까지 같이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날은 업무가 많이 몰려 있던 시기였고, 저도 솔직히 조금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요즘 많이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잠깐 웃으면서 "괜찮아요. 하면 되죠"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그 말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힘들다는 생각도 하고, 언제 끝날까 생각도 하는데 저 사람은 참 잘 버티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사람과 다시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때 괜찮았던 게 아니더라고요. 회사 일도 힘들었고,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일도 있었는데 그냥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조금 멍했던 것 같습니다.

    몇 년을 같이 일하면서 저는 그 사람을 꽤 잘 안다고 생각했거든요. 같이 일하면서 어떤 성격인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왕자』를 다시 읽으면서 마음에 남았던 부분들도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내용들이, 지금은 내가 실제로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과 연결되더라고요.

    나는 그동안 사람을 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고 있으면 괜찮은 줄 알았고, 일을 잘하면 힘든 것도 잘 견디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힘든 마음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것뿐이었습니다.

    사실 이 생각은 그 동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면 나도 비슷하게 살아왔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은 척했고, 가장이라는 이유로, 사회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내 고민을 쉽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적도 많았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직장 동료, 밤 9시 '괜찮아요 하면 되죠'의 진짜 의미

    그 장면은 아직도 조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날은 아마 저녁 9시가 넘었던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사무실에는 몇 명 남아 있지 않았고, 대부분은 퇴근한 상황이었어요. 저도 일이 남아서 자리에 있었고, 그 동료도 자기 업무를 계속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 사람에게 "요즘 많이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어봤습니다.

    사실 큰 의미를 두고 한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날 일이 많았고, 저도 조금 지쳐 있었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잠깐 웃으면서 "괜찮아요. 하면 되죠"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긍정적인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사람,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조금 부럽기도 했습니다.

    나는 힘들면 표정에도 나오고,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는데 저 사람은 참 단단하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때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니까 제가 봤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 사람이 괜찮았던 게 아니었습니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냥 자기 일을 하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 차이를 저는 그때 몰랐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힘들다고 해서 항상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고민을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특히 같이 일하는 관계에서는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업무를 잘하고, 맡은 일을 해내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 사람이 힘든 상황에서도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버티는 과정 자체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을 보는 기준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힘든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이 강한 게 아니라,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강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힘든 걸 해결한 게 아니라 안 보이게 가지고 있었던 것

    그 동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사실 제 모습을 많이 돌아봤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바로 이야기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맡은 역할이 있었고, 집에서는 또 가족 안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괜찮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그 상황을 해결했다기보다, 보이지 않게 가지고 있었던 것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하고, 책임져야 하는 게 있으니까 버티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넘어갔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누구나 자기 고민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린왕자』를 다시 읽으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대부분 그 사람이 보여주는 일부만 보고 판단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웃고 있는 사람도 집에서는 고민이 있을 수 있고, 아무렇지 않게 일하는 사람도 혼자 있을 때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 동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봤던 모습은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실제로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제가 보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그걸 알고 나니까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누군가가 잘하고 있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고, 웃고 있다고 해서 편한 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린왕자가 말한 것, 웃는다고 편한 건 아니다

    『어린왕자』를 다시 읽으면서 가장 오래 남았던 건 특별한 문장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책 속 이야기가 제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을 볼 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잘하면 "저 사람은 능력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고, 항상 웃고 있으면 "저 사람은 걱정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웃고 있다고 편한 건 아닐 수 있다는 것.

    괜찮다고 말한다고 정말 괜찮은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

    사람마다 힘든 일을 견디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는 힘들면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하면서 풀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냥 조용히 자기 안에 담아두기도 합니다.

    어떤 방식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예전의 저는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이 없는 게 아니고, 웃는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는 맡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고, 가족에게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저만 알고 있던 고민들도 있었고, 혼자 생각했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걸 생각하니까 조금 겸손해졌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사실은 그 사람의 아주 작은 부분만 보고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어린왕자』에서 말하는 중요한 것들이 결국 이런 부분과 연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 생각해보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먼저 보이는 것부터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혹시 내가 모르는 힘든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을 한 번 더 하게 됐습니다.

    그게 『어린왕자』를 다시 읽고 제가 얻은 가장 현실적인 변화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창한 다짐보다는, 그냥 주변 사람을 조금 덜 쉽게 판단하게 된 것.

    저에게는 그 정도 변화가 오히려 오래 남았습니다.

     

     

    웃고 있다고 편한 건 아닐 수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 괜찮아 보이면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려고 합니다. 내가 모르는 그 사람만의 시간이 있을 수 있고, 말하지 않는 고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를 볼 때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야"라고 정리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한 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조금 여유를 주려고 합니다. 힘든 순간이 있다고 해서 약한 게 아니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해결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