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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 얘기가 된 것 같아서 책을 덮었다
갑자기 내 얘기가 된 것 같아서 책을 덮었어요. 오디세우스가 집에 돌아온 뒤에도 바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주변을 살피는 장면이었는데, 그걸 읽다가 갑자기 퇴사하고 난 뒤의 내가 생각났어요.
나도 회사를 나오면 그냥 끝인 줄 알았어요. 힘들었던 자리에서 나오면 좀 편해질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그 자리를 떠나고 나니까 생각보다 이상했어요. 매일 하던 일이 없어지고, 내가 하루 동안 뭘 해야 하는지도 예전처럼 정해져 있지 않더라고요.
그 장면에서 오디세우스가 집에 돌아왔다고 바로 예전의 오디세우스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어요. 나도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익숙했던 자리와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건지 잠깐 생각하게 됐고요. 그래서 책을 덮었어요.
오디세이아, 책을 덮게 만든 장면
오디세우스가 집에 돌아왔는데도 바로 예전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장면이 계속 생각났어요.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집에 돌아가는 과정이 힘들었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장면에서는 돌아가는 것 자체보다, 돌아간 뒤에 자기 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게 더 오래 남았어요.
그러다 보니 내 하루가 생각났어요. 퇴사하고 한동안은 오후만 되면 좀 이상했어요. 오전에는 그래도 이것저것 할 일이 있었어요. 일자리도 알아보고, 공부도 하고, 해야 할 것도 찾았는데 오후쯤 되면 갑자기 하루가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예전 회사에 있을 때는 그 시간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요. 전화도 하고, 확인할 것도 있고, 오늘 안에 처리해야 할 일도 있었어요. 그때는 그런 게 귀찮기도 했는데, 막상 없어지고 나니까 그게 그냥 일이 아니라 내 하루를 채우고 있던 무언가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디세우스가 돌아온 뒤에도 바로 자기 자리로 들어가지 못하는 게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어요. 나도 어딘가를 떠났고, 다시 내 자리를 찾는 데 시간이 필요한 상태였던 것 같아요.
퇴사 두세 달, 오디세우스가 겹쳤다
퇴사하고 두세 달 정도 지나니까 그게 더 선명해졌어요. 처음에는 퇴사했다는 사실 자체가 크게 느껴졌어요. 이제 뭘 하지, 어디에 지원하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많았고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다른 게 보이더라고요. 매일 하던 역할이 없어졌다는 게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어요.
회사에 있을 때는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됐어요. 그냥 아침에 출근하면 내가 할 일이 있었고, 누가 나한테 뭘 물어보면 내가 대답해야 했고, 하루가 끝나면 오늘 뭘 했는지도 어느 정도 남았어요.
그런데 그게 한꺼번에 없어졌어요.
어느 날은 문득 이런 생각까지 했어요. '내가 돌아가고 싶은 건 회사일까, 아니면 그때의 익숙했던 나일까.'
회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했던 일을 다시 하라고 하면 또 답답할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의 생활은 생각났어요. 오후가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있었고,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지면 뭘 정리하고 있었고, 그런 아주 평범한 것들이요.
그러면서 내가 그 자리를 떠난 뒤에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도 생각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회사라는 자리가 나를 어느 정도 설명해줬던 것 같아요. 어디에서 일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면 됐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없어지고 나니까 나를 설명할 말도 갑자기 줄어든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오디세우스 이야기가 더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 긴 게 아니라, 돌아간 뒤에도 내가 원래 있던 자리가 정말 내 자리인지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하던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하던 나를 잃었다
그 장면을 계속 생각하다가 결국 이런 생각까지 갔어요.
'나는 하던 일을 잃은 게 아니라, 그 일을 하던 나를 잃어버린 것에 더 가까운 건가.'
이 생각이 들고 나니까 퇴사 후에 왜 그렇게 하루가 비어 보였는지도 조금 알 것 같았어요. 일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던 거예요. 매일 반복하던 역할이 없어지니까 그 역할을 하고 있던 나까지 같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때 책을 덮고 한참 앉아 있었어요. 사실 뭔가 대단한 깨달음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내 이야기가 갑자기 책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바로 다음 페이지를 읽기가 싫었어요.
10분 정도 있다가 다시 책을 폈어요.
그 뒤부터는 오디세우스가 어디를 지나갔는지보다 자기가 돌아온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지를 더 유심히 보게 됐어요. 전에는 '집에 돌아가면 끝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 그때부터는 '돌아간 다음이 또 시작이구나' 하는 쪽으로 보였어요.
나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퇴사하면 회사에서 벗어나는 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와 보니까 그다음부터 내가 어떤 사람으로 하루를 보낼지 다시 만들어야 했어요.
그게 꼭 거창한 일이었던 건 아니고요. 오후에 하루가 비어 있는 것 같으면 뭘 할지 정하고, 내가 예전에 하던 일과 지금의 나를 자꾸 비교하지 않으려고 하고, 또 새로운 일을 알아보면서 조금씩 생활의 자리를 다시 만들어가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오디세우스가 집에 돌아온 장면이 계속 남았던 것 같아요. 나한테도 돌아갈 곳보다 돌아간 뒤 다시 내 자리라고 느낄 수 있는 곳을 만드는 일이 더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분 뒤 다시 폈더니 오디세우스가 자리를 되찾는 과정을 더 유심히 보게 됐어요. 그 뒤로는 이 책을 누군가의 모험담이라기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한번씩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처럼 읽게 됐어요. 아직 내 자리도 완전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예전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지금의 나한테 맞는 자리를 다시 찾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조금 더 커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