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요리 관련 책을 그다지 찾아 읽는 편이 아닙니다. 레시피가 빼곡하거나 셰프의 성공담으로 가득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강록 셰프의 『요리를 한다는 것』은 그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흑백요리사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처음 그를 알게 된 이후, 말수 적고 묵묵하게 요리에 집중하는 그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책이 바로 그 갈증을 채워줬습니다.
요리보다 궁금한 그 사람, 최강록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 2 우승 이후 최강록 셰프는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흑백요리사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경쟁 프로그램 특유의 자기 과시와는 거리가 멉니다. 차분하고 조근조근한 화법, 카메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 제가 직접 여러 회차를 돌려보면서 느낀 건, 이 사람에게는 오랜 시간 쌓인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당시 그가 "책을 쓰기 위해 산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지금 이 책을 손에 들고 나니 그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 고독한 시간의 결실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최강록 셰프의 내향적인 분위기는 저 자신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화려한 언변이나 과장된 리액션보다는 조용히 자기 일에 집중하는 스타일. 소심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게 단점이 아니라는 걸 그를 보면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요리가 궁금하기 이전에, 그 사람 자체가 궁금해졌고 그 답을 책에서 찾았습니다.
기본이 곧 실력
이 책을 요리 기술서로 기대하고 펼치면 조금 당황할 수 있습니다. 레시피 하나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최강록 셰프는 마이즈 앙 플라스(mise en place)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이즈 앙 플라스란 요리를 시작하기 전 모든 재료와 도구를 제자리에 준비해 두는 것을 의미하는 프랑스 요리 용어로, 요리사의 습관과 태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개념입니다. 화려한 기술보다 이 준비의 자세가 음식의 품질을 좌우한다는 것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시각입니다.
또 책 곳곳에서 테루아르(terroir)라는 개념을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테루아르란 원래 와인에서 쓰이던 용어로, 재료가 자란 땅과 환경, 기후의 특성이 맛에 그대로 담긴다는 뜻입니다. 최강록 셰프는 재료를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 않고 자연과 사람의 노력이 응축된 결과물로 다루라고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 관점은 단순히 요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떤 재료든 그것이 여기까지 오는 데 들어간 과정을 생각하면 함부로 다루기가 어려워집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가 자신의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생각처럼 되지 않은 요리,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물.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방식이 오히려 더 신뢰를 줬습니다. 실력은 성공을 반복하면서 쌓이는 게 아니라 실패를 통과하면서 만들어진다는 것, 이 책이 전하는 가장 솔직한 메시지였습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요리는 특별한 재능이 아닌 매일의 반복과 태도에서 만들어진다
- 칼질, 불 조절, 재료 손질 같은 기본기가 화려한 기술보다 음식의 품질을 더 크게 결정한다
-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반복하는 과정이 자신만의 감각(팔레트)을 형성한다
- 음식의 가치는 재료의 가격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관계에서 결정된다
국내 요리 관련 도서 시장에서 에세이 형식의 요리서는 꾸준히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 통계에 따르면, 요리·생활 분야 에세이는 자기계발 분야와 교차 독자층을 공유하며 판매 비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 책이 단순한 요리서가 아닌 자기성장서로 읽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결국 삶의 태도였다
책을 덮고 나서 저는 오래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요리에 관한 책이었는데 결국 제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강록 셰프가 이야기하는 플레이팅(plating)의 감각, 즉 완성된 음식을 그릇에 담는 최종 과정조차 즉흥적이 아니라 오랜 반복에서 나온다는 말은 요리를 떠나 어떤 일에도 적용됩니다. 플레이팅이란 단순히 예쁘게 담는 행위가 아니라, 요리 전 과정에 대한 이해가 집약되는 마지막 표현입니다.
저도 좋아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솔직히 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그 일을 끝까지 사랑하고 붙잡을 수 있는가?' 최강록 셰프를 보면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는 여운입니다.
흑백요리사와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창의력과 손맛에 경외감을 느꼈다면, 이 책은 그 감각이 어디서 오는지 설명해줍니다. 특정 냄새와 맛이 오래된 기억을 불러오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라고 부릅니다. 어린 시절 먹던 국 한 그릇이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음식이 단순한 열량 공급이 아닌 관계와 기억의 매개체라는 사실은 식품영양학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요리를 잘하고 싶거나, 좋아하는 일에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태도를 이야기하는 책이기 때문에,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충분히 자신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저처럼 한 수 배우고 싶다면 천천히, 한 장씩 넘겨보시길 바랍니다.
참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