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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줄이면 하루가 길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저 역시 40대에 다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수면 시간을 제일 먼저 깎았습니다. 그런데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를 읽고 나서, 그 믿음이 얼마나 비싼 착각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수면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뇌와 몸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이었습니다.
밤새 공부해도 기억이 안 남는 이유
시험을 앞두고 밤을 새운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예전에 그게 당연한 수험 공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야 그 방식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매슈 워커는 학습한 내용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과정, 즉 기억 공고화(memory consolidation)가 수면 중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기억 공고화란 뇌가 낮 동안 받아들인 정보를 재정리하고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옮기는 과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공부는 낮에 하지만 기억은 자는 동안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잠을 자야 기억이 완성된다"는 말이 처음엔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가 경험해 봤는데, 창업 아이디어를 새벽까지 정리해 놓고 다음 날 다시 보면 논리가 허술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메모만 남기고 잠을 자고 나면, 아침에 훨씬 명료하게 정리된 생각으로 같은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직접 써봤는데 정말 차이가 컸습니다.
"잠을 줄여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시간이 오히려 기억을 날려버리는 시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해마(hippocampus), 즉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뇌 부위의 기능이 떨어져 아무리 많은 정보를 넣어도 저장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출처: Sleep Foundation).
- 기억 공고화는 수면 중, 특히 렘(REM) 수면 단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해마 기능이 저하되어 새로운 정보 저장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 시험 전날 밤을 새우는 것보다 규칙적인 취침 습관이 학습 성과에 더 효과적입니다
면역력 영양제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
몸이 자주 피곤하거나 감기가 잘 낫지 않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영양제를 사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비타민 C, 아연, 홍삼까지 챙겨 먹으면서 정작 수면은 6시간도 안 됐던 적이 많았습니다.
매슈 워커는 수면이 면역 시스템의 핵심 유지 조건이라고 설명합니다. 수면 중에는 자연살해세포(NK cell, Natural Killer Cell)의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NK 세포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초기 암세포를 스스로 찾아 제거하는 면역 세포로, 우리 몸의 1차 방어선 역할을 합니다. 하룻밤만 수면이 부족해도 이 NK 세포의 활성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보건원(NIH)).
"수면 시간보다 영양 보충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회사를 다닐 때 가장 피로했던 시기는 야근이 길었던 때였고, 가장 몸 상태가 좋았던 시기는 칼퇴근 후 충분히 잔 날들이었습니다. 영양제를 끊어도 수면이 충분하면 몸이 버텼고, 영양제를 먹어도 잠이 부족하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습니다.
물론 이상적인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습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나 교대 근무를 하는 분들에게 "8시간 자세요"라고 말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수면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일정한 취침 시간 유지, 자기 전 스마트폰 줄이기, 침실 온도를 약간 서늘하게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수면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잠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의사결정 자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잠을 충분히 자야겠다"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 머릿속에 남은 건 "잠은 내일의 판단력을 충전하는 시간"이라는 관점이었습니다.
경영학에서는 의사결정(decision making)을 기업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역량으로 다룹니다. 의사결정이란 여러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행동 방향을 선택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 능력이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 워커의 핵심 주장 중 하나입니다.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전전두엽이란 계획, 판단, 충동 조절처럼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뇌 부위입니다.
저는 40대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 창업을 준비하면서,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사업 방향을 잡을지, 어디에 시간을 먼저 쓸지, 누구와 협력할지 같은 문제들이 매일 쌓입니다. 그런데 충분히 자고 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판단 수준 차이가 제 경험상 정말 눈에 띄게 다릅니다.
"더 오래 버티며 고민하는 것이 성실함"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중요한 결정일수록 잠을 자고 다음 날 다시 보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창업은 속도보다 지속 가능성의 싸움이라는 말처럼, 매일 좋은 판단을 유지하려면 뇌에 충분한 회복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면은 하루를 끝내는 시간이 아니라, 내일의 나에게 쓸 자본을 충전하는 시간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하루에 꼭 8시간을 자야 하나요?
A. "8시간이 절대 기준"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개인차가 있다고 봅니다. 성인의 일반 권장 수면 시간은 7~9시간이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잤느냐보다 일어났을 때 충분히 회복된 느낌이 드는지 여부입니다. 단, 6시간 이하로 꾸준히 자는 것은 다양한 연구에서 건강 위험 신호로 나타납니다.
Q. 잠을 못 자도 카페인으로 버틸 수 있지 않나요?
A. 카페인으로 각성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실제로는 피로감을 일시적으로 가릴 뿐 뇌의 회복 부족을 보완하지는 못합니다. 특히 카페인은 수면을 유도하는 물질인 아데노신(adenosine)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카페인이 빠지면 그 아데노신이 한꺼번에 밀려와 더 심한 피로감을 유발합니다. 오후 늦게 카페인을 섭취하면 수면의 질도 떨어집니다.
Q. 매슈 워커의 책, 과학적으로 믿을 만한가요?
A. 저자가 오랜 기간 수면을 연구한 신경과학자라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많습니다. 다만 출간 이후 일부 연구 해석이나 특정 수치에 대해 학계에서 이견이 제기된 것도 사실입니다. 수면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로 접근하되, 최신 연구도 함께 참고하면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Q. 잠이 운동 효과에도 영향을 주나요?
A. 그렇습니다. 근육 성장과 회복은 운동 중이 아니라 수면 중에 이루어집니다. 성장호르몬(growth hormone)이 깊은 수면 단계에서 분비되는데, 이때 손상된 근섬유가 복구되고 근육량이 증가합니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수면이 부족하면 회복이 늦어지고 부상 위험도 높아집니다.
결론
이 책이 저에게 준 가장 큰 변화는 수면을 바라보는 기준이 바뀐 것입니다. 예전에는 잠을 줄이는 것이 의지력의 증거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충분히 자는 것이 내일의 판단력과 집중력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평소보다 30분 일찍 눕는 것, 자기 전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 주말에도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사업 계획보다 수면 습관을 먼저 정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첫 번째 자기 관리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확실한 자기계발의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참고: Sleep Foundation — Memory and Sleep / 미국 국립보건원(NIH) — How Sleep Affects Immu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