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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녹음 중, 평범한 저녁이 다르게 남았다

책읽기 프로젝트 매니저 2026. 8. 12. 07:21

목차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거야?" 한 마디가 이상하게 남아서 다시 "뭐 먹고 싶어?" 되물었다.

    어느 날 아내가 평소처럼 물었습니다. 정말 자주 듣던 말이라면 그냥 대답하고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 말이 바로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거야?"

    예전 같았으면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생각하거나 배달을 시킬지 말지 정하고 끝났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대답하기 전에 잠깐 멈췄습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뭐 먹고 싶은데?"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별것 아닌 대화였습니다. 결국 그날 특별한 걸 먹은 것도 아닙니다. 메뉴를 정하고 저녁을 먹었고, 평소처럼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대화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책을 읽기 전이었다면 아마 기억하지 못했을 말입니다. 그런데 『인생 녹음 중』을 읽고 있으니까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말 하나가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것도 나중에는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이 되는 건가."

    그 뒤로 책을 읽는 동안보다 책을 덮고 집에 있을 때 아내가 하는 말이 더 자주 생각났습니다.

    1 — 저녁 메뉴 질문이 이상하게 남은 날

    그날도 특별한 날은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평소처럼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저도 그냥 대답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바로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있던 시기라서 그랬던 건지, 퇴사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랬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평소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을 말인데 그날은 잠깐 멈췄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뭐 먹고 싶은데?"

    아내도 아마 별생각 없이 대답했을 겁니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얘기하고, 뭘 먹을지 얘기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저녁 메뉴를 정했습니다.

    결국 특별한 걸 먹은 것도 아닙니다.

    그날 먹은 음식이 특별해서 기억에 남은 것도 아닙니다. 지금 생각하면 뭘 먹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대화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대화는 그냥 하루 안에 섞여서 사라졌을 것 같습니다.

    아내가 물어보고 제가 대답하고, 필요한 얘기가 끝나면 각자 하던 일을 했을 겁니다. 특별히 싸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다정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저녁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까 오히려 그런 평범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생각해보면 같이 사는 사람하고 나누는 말 중에 정말 중요한 말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습니다. 대부분은 밥 먹었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뭐 필요한지 같은 말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계속 쌓이면 결국 같이 보낸 시간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저녁 메뉴를 정하는 대화가 끝났는데도 한동안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2 — 인생 녹음 중, 대화를 내용으로만 듣던 사람

    예전에는 대화를 내용으로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뭔가를 물어보면 그 질문에 대답하고, 제가 할 말이 있으면 하고, 그렇게 대화가 끝나면 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거야?"라고 물으면 저한테는 그냥 저녁 메뉴를 정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꼭 질문 하나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오늘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서 나한테 말을 걸고 있는 거고,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하루의 일부를 같이 보내고 있는 거였는데 저는 그걸 그냥 내용으로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해야 대화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돈 문제처럼 결정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집중해서 듣는데, 별것 아닌 이야기는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는 아주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지금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고 있구나."

    정말 그 정도였습니다.

    엄청 깊은 대화를 하게 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서로 속마음을 다 이야기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뭐 먹지?" 같은 얘기를 하고, 서로 대답하다가 다른 얘기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그 대화가 오가는 시간을 예전처럼 그냥 지나치지는 않게 됐습니다.

    한번 더 듣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아내가 한 말을 듣고 바로 다음 말을 생각하기보다, 가끔은 그 말 자체를 그냥 듣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별것 아닌 말인데도 그때의 분위기까지 같이 남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게 좀 신기했습니다.

    대화의 내용이 달라진 건 아닌데, 제가 듣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 겁니다.

    예전에는 "무슨 말을 했지?"가 먼저였다면 지금은 가끔 "우리가 그때 같이 있었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3 — 퇴사 후 읽은 인생 녹음 중, 머릿속이 달라진 자리

    이 책은 퇴사하고 한 달 정도 지난 뒤에 읽었습니다.

    집에서 쉬면서 한꺼번에 읽은 게 아니라 일주일 정도에 걸쳐 몇 장씩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는 시간과 제가 실제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겹쳤습니다.

    퇴사 전에는 아내와 얘기하면서도 제 머릿속은 회사 일로 다른 데 가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서도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회사에서 들었던 말이 계속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말을 걸어도 듣고는 있었는데 제대로 듣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몸은 집에 있는데 머리는 다른 곳에 있었던 거죠.

    퇴사하고 나니까 그게 조금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시간이 많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출근을 안 하니까 아침이 여유롭고, 회사에서 보내던 시간이 없어졌으니까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내 시간이 많아진 게 아니라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거구나."

    그 생각이 한번 들고 나니까 집에 있는 시간이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꼭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랑 밥을 먹고, 별것 아닌 얘기를 하고, TV를 보다가 한마디씩 주고받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걸 굳이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퇴사하고 시간이 많아지고, 이 책까지 읽고 나니까 그 평범한 시간이 조금 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말을 걸면 예전보다 조금 더 오래 듣게 됐습니다.

    회사 생각을 완전히 안 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머릿속이 다른 데 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집에 와서도 하루 종일 다른 곳에 있는 느낌은 조금 줄었습니다.

    퇴사라는 게 저한테는 처음에는 단순히 일을 그만둔 일이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달라진 일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4 — 인생 녹음 중, 덮고 나서 집에서 계속 이어진 책

    이 책은 읽는 시간보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이 더 많이 났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을 때는 그냥 책을 읽었습니다. 몇 장 읽고 덮고, 다음 날 다시 펼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책을 덮고 집에 있으면 아내가 하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특히 아주 평범한 말들이 그랬습니다.

    "오늘 뭐 먹을 거야?"

    "이거 어디에 놔둘까?"

    "내일 뭐 해?"

    예전 같으면 그냥 대답하고 지나갔을 말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가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춥니다.

    아, 지금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고 있구나.

    그 생각이 먼저 들 때가 있습니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부부 사이가 갑자기 특별해진 건 아닙니다. 여전히 서로 대충 대답할 때도 있고, 피곤하면 말없이 지나가는 날도 있습니다.

    저도 매번 잘 듣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런 대화를 그냥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 안에 같이 보낸 시간이 들어 있다는 생각을 조금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저한테 빨리 읽고 끝낸 책은 아니었습니다.

    읽고 나서 집에서 계속 이어진 책에 가까웠습니다.

    책을 읽고 난 다음 날 아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특별히 기억하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평범한 말을 들을 때마다 가끔 책에서 생각했던 장면이 겹쳐졌습니다.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듣는 시간이 조금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대화가 끝나면 "무슨 얘기였지?" 하고 내용만 남았다면, 지금은 가끔 그날 저녁의 분위기나 같이 있었던 시간이 먼저 생각납니다.

    결국 특별한 저녁을 먹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평범했던 시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계속 생각했던 것도 그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읽는 동안 무언가를 배웠다기보다, 책을 덮고 집에 돌아와서 평소와 똑같은 말을 듣는데 그게 조금 다르게 들렸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아직도 책상 위에 있는 책이라기보다, 집에서 아내랑 이야기할 때 가끔 다시 떠오르는 책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 시간이 많아진 게 아니라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거구나"

    요즘은 아내가 말을 걸면 예전보다 조금 덜 급하게 대답하려고 합니다. 별것 아닌 얘기라도 가끔은 그냥 그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