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란성쌍둥이인 두 자매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한 명은 가난하고 한 명은 부유하다. 그런데 행복한 쪽은 뜻밖에도 가난한 쪽이다. 양귀자의 <모순>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이 설정이 조금 작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이건 작위적인 게 아니라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이 맞는 사람과 결이 맞지 않는 사람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은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조건이 좋은 남자와 감정적으로 끌리는 남자. 머리가 가리키는 방향과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조건이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결혼 관련 연구들이 경제적 안정이 결혼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사람 사이의 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결이란 대화의 흐름, 생각의 방향, 감정의 온도가 서로 얼마나 닮아 있는가를 말합니다.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대화가 툭툭 끊기고 함께 있을 때 피로감이 느껴진다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도 서로의 말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라면, 거기서 생명력이 자라납니다.
소설 속 어머니와 이모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어머니의 삶에는 웃음이 있고 이모의 삶에는 공허함이 있습니다. 진진은 이 두 삶을 가까이서 보며 자신이 무엇을 기준으로 행복을 재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비교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사회비교이론이란 사람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나 상황을 평가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어머니는 이모의 부유함을 부러워하고, 이모는 어머니의 활기를 부러워합니다. 둘 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봅니다. 이 패턴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2023년 한국심리학회 연구에 따르면 주관적 행복감은 절대적 소득보다 주변과의 비교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고 보고되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이 결과를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찔렸습니다. 저도 타인의 삶과 제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왔다는 걸 부정하기 어려웠으니까요.
소설에서 진진이 겪는 갈등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머리의 선택: 안정적인 조건을 가진 남자
- 마음의 선택: 감정적으로 결이 맞는 남자
- 진진이 마주한 질문: 행복은 조건에서 오는가, 결에서 오는가
이 세 가지 구도는 사실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한 번쯤 마주하는 구도입니다.
선택 이후의 태도가 행복을 만든다
양귀자는 소설에서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선택 이후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를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A를 선택하면 B에 대한 아쉬움이 남고, B를 선택하면 A에 대한 미련이 생깁니다. 이것이 인간의 인지적 불일치(Cognitive Dissonance)입니다. 인지적 불일치란 자신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 사이에서 심리적 긴장을 경험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선택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해도 결핍은 남습니다.
저는 요즘 들어 사람들은 결국 자기 좋을 대로 살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겉으로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무의식은 그 삶을 택하고 있는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봅니다. 그런 사람에게 충고나 동정은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 삶을 살아가며 무언가를 배우고 있으니까요. 이건 제가 직접 경험하며 깨달은 부분입니다. 답답해 보이는 선택도, 한심해 보이는 결정도, 당사자에게는 그 과정 자체가 배움입니다.
이와 관련해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 분야에서는 삶의 만족도가 외부 조건보다 내적 의미 부여 방식에 더 크게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긍정심리학이란 인간의 결핍과 병리보다 강점과 번영에 초점을 맞추는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 마틴 셀리그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인 행복감은 좋은 환경보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에서 비롯됩니다(출처: University of Pennsylvania Positive Psychology Center).
소설 속 어머니가 바로 이 사례입니다. 경제적으로 고단하지만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 웃음을 잃지 않는 태도가 그녀에게 생명력을 줍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오래 생각한 부분도 바로 여기입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충돌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상황을 선택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삶을 바라보는 순간들. 그게 바로 모순의 순간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모순이 불편한 게 아니라, 사실은 삶의 자연스러운 질감이라는 것을요.
꽤 오래전 소설임에도 인생이 끝없는 고민의 연속이라는 점은 조금도 낡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진진의 갈등이 더 선명하게 이해됩니다.
<모순>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특정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선택은 없고, 완벽한 행복도 없습니다. 그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자기만의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지금 자신의 선택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시점에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한국심리학회, University of Pennsylvania Positive Psychology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