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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년이 온다> 리뷰(국가폭력, 인간존엄)

by 책읽기 프로젝트 매니저 2026. 6. 1.

소년이 온다




책을 읽다가 손을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적,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딱 그랬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책이기도 하지만, 읽는 내내 그 자리에서 숨을 참게 만드는 문학이기도 했습니다.

국가폭력 앞에 선 개인들의 목소리

저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광주가 어떤 곳이었는지, 계엄군의 총성이 어떤 소리였는지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닙니다. 자라면서 교과서와 영화, 인터넷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광주민주화운동이 "거대한 역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제 삶과 멀리 떨어진 무언가처럼요.

그런데 <소년이 온다>는 그 거리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소설은 중학생 동호라는 한 소년의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기 위해 시신이 가득한 도청과 체육관을 오갑니다. 이 장면에서 제가 직접 느낀 건 규모의 비극이 아니라 한 아이의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작품의 가장 독특한 서사 구조는 다성 화자, 즉 여러 인물이 교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입니다. 다성 화자란 소설 안에서 하나의 시점이 아닌 복수의 목소리가 각자 독립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술 방식을 말합니다. 동호, 정대의 영혼, 살아남은 생존자, 노동자, 어머니까지 저마다 다른 위치에서 그날을 증언합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이 구조가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정대가 죽은 뒤에도 자신의 시신이 훼손되는 걸 바라보는 장면은 인간 존엄성(Human Dignity)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 존엄성이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가치와 권리를 뜻합니다. 죽은 뒤에도 그 존엄이 짓밟히는 장면에서 저는 인간으로서 분노와 좌절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계엄령이라는 단어도 이 소설 안에서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계엄령이란 전쟁이나 내란 등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군이 행정·사법권을 장악하는 비상조치를 말합니다. 권력 찬탈을 위해 이것이 자국 시민에게 남용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소설은 숫자 대신 사람의 얼굴로 보여줍니다.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에 의한 광주 시민 피해 상황에 대해서는 지금도 공식적인 진상규명이 진행 중입니다(출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그 사실 자체가 이 소설이 단순한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말해줍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국가가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권력이 얼마나 쉽게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공권력이란 국가나 공공기관이 공공 목적을 위해 행사하는 법적 권한을 뜻합니다. 그 권한이 시민을 향한 총구가 되는 순간, 그 사회의 무언가가 근본부터 무너집니다.

이 소설이 담고 있는 핵심 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국가폭력이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 죽음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희생자의 고통과 존엄 훼손
  •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는 죄책감과 트라우마
  •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 속에서 기억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싸움

인간존엄을 지킨다는 것, 오늘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머문 문장들은 폭력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이 가득한 공간에서도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고, 시신 곁을 지키고, 서로의 손을 꼭 잡는 장면들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아프고 잔혹한 소설이 동시에 이렇게까지 따뜻할 수 있다는 게.

한강은 절제된 문체로 감정을 전달합니다. 과잉된 묘사 없이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문장들이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듭니다. 이것이 이 소설의 문학적 레지스탕스(Résistance), 즉 저항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지스탕스란 억압에 맞서는 조직적·비조직적 저항을 뜻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총이나 주먹이 아닌 글쓰기 자체가 그 저항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한강은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그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소년이 온다>를 포함한 작품들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고 평가했습니다(출처: 노벨위원회).

현시대에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시도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부정은 단순한 역사 해석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희생자들에게 다시 한번 폭력을 가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기억이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있게 하는 행위입니다. 동호가 지금도 우리에게 오고 있다는 제목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책을 덮지 못했습니다.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쉬운 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번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민주주의가 어디서 왔는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천천히 시간을 내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참고: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노벨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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