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책 소개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범죄자들"이라는 문구를 보고 골랐는데, 막상 읽어보니 제가 상상하던 것과는 방향이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손을 놓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기대와 현실: 예고편과 본편이 달랐던 책
책을 고를 때 저는 소개 문구를 꽤 꼼꼼히 읽는 편입니다. "일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범죄자들의 이중적인 얼굴"이라는 문장에서 이중인격적 인물, 즉 낮에는 동네 주민, 밤에는 연쇄범죄자 같은 구도를 기대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페르소나(persona) 개념처럼요. 여기서 페르소나란 개인이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에게 보여주는 외적 이미지, 즉 진짜 자아와 구별되는 사회적 가면을 의미합니다. 그 간극이 긴장감을 만들어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달랐습니다. 마약 중독인 살인자,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비롯된 연쇄살인마, 권력을 이용해 타인을 조종하는 인물. 솔직히 제 눈에는 이들이 '가면을 쓴 사람'이라기보다 그냥 대놓고 나쁜 사람들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소설의 메시지를 놓친 걸 수도 있겠지만, 기대했던 이중성의 팽팽한 긴장감은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실망스럽기만 했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전개가 빠르고 글이 술술 읽혔습니다. 딱히 어떤 구절을 남기겠다는 목적으로 쓴 것 같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지나치게 과한 수사나 "이 문장 좀 봐줘"라는 느낌이 없고, 군더더기 없이 내달리는 문체였습니다. 등장인물이 꽤 많고 성을 붙이다가 안 붙이다가 해서 중간에 헷갈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읽는 속도가 꽤 빠른 편이었습니다.
인상 형성: 우리는 얼굴을 얼마나 믿고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얼굴을 얼마나 신뢰의 근거로 쓰고 있을까요?
사회심리학에는 후광 효과(halo effec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사람의 한 가지 특성, 특히 외모가 긍정적일 때 그 사람의 다른 특성도 덩달아 좋게 평가하는 인지적 편향을 말합니다. 실제로 외모가 준수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취업 면접에서 더 유리한 결과를 얻는다는 연구 결과가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제가 직접 경험해 봐도 그렇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눈빛이 선하다 싶으면 괜히 먼저 마음이 열리고, 인상이 날카롭다 싶으면 경계가 먼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 판단을 완전히 끄기가 어렵습니다. 이 책은 그 불편한 진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만들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또 다른 층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얼굴은 단순히 타고난 형태가 아니라 반복된 표정과 감정, 습관이 누적되어 바뀐다는 시각입니다. 이것은 안면 피드백 효과(facial feedback effect)와도 연결됩니다. 안면 피드백 효과란 얼굴 표정이 단순히 감정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감정에도 영향을 준다는 이론입니다. 오래 웃은 사람의 얼굴과 오래 찡그린 사람의 얼굴이 세월이 지날수록 달라지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첫인상은 수 초 내에 형성되며 이후 정보 처리를 강하게 편향시킨다
- 얼굴에 대한 판단은 취업, 인간관계, 사법 판단 등 사회 전반에 실제 영향을 미친다
- SNS 필터 문화는 외모 불안과 자기 비교를 구조적으로 심화시킨다
- 얼굴의 형태는 살아온 방식과 감정 습관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삶의 기록: 얼굴을 만드는 건 결국 어떻게 사느냐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이 방향이었습니다. 젊을 때의 얼굴은 부모에게서 받지만, 나이 든 이후의 얼굴은 자신의 몫이라는 시각. 같은 주름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따뜻함으로 읽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냉소로 읽히는 이유가 얼굴의 구조보다 그 안에 담긴 삶의 태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관상학(physiognomy)이라는 학문은 얼굴의 형태로 성격이나 운명을 읽으려 했던 오래된 시도입니다. 관상학이란 눈, 코, 입, 이마의 형태와 배치를 분석해 그 사람의 내면적 특성이나 미래를 예측하려는 체계입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이 방법의 신뢰도에 상당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오랜 집착이 시사하는 것은 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으려 했고, 그 욕구는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남의 기대에 맞추느라 어떤 표정을 짓고 살아왔는지, 그 표정이 지금 제 얼굴에 어떻게 쌓여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누군가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감각이 단순한 착각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비언어적 의사소통(non-verbal communication)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 전달에서 표정과 몸짓이 차지하는 비중은 말 자체보다 훨씬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언어과학회). 비언어적 의사소통이란 언어적 표현 외에 표정, 눈빛, 자세 등을 통해 전달되는 모든 소통 방식을 뜻합니다. 얼굴이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책은 킬링 타임용으로 읽기에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징그럽거나 과도하게 잔인한 묘사 없이 추리물을 즐기고 싶은 분들께는 특히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다만 기대하던 종류의 이중성은 없었다는 점, 미리 알고 들어가면 오히려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타인의 얼굴보다 먼저 자신의 얼굴을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