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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서 보는 나 vs 벌써 하고 있는 그 사람, 혼자 자책 몇 달
그때 나는 설명서를 보고 있었고, 그 사람은 벌써 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 맡아보는 일이라 하나씩 찾아가면서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설명을 한번 듣더니 금방 하더라고요. 그걸 옆에서 보고 있으니까 괜히 내가 느린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그냥 '저 사람이 일을 잘하나 보다'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니까 자꾸 비교하게 됐어요. 나는 아직 설명서를 보고 있는데 저 사람은 벌써 다음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나는 왜 이렇게 늦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생각보다 오래 갔어요. 한두 번 자책하고 끝난 게 아니라 몇 달 동안 비슷한 상황만 생기면 다시 떠올랐어요.
그때는 제가 그 사람과 같은 자리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총균쇠》를 읽으면서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나는 결과만 보고 있었고, 그 사람이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던 거예요.
1 — 총균쇠 읽기, 설명서 보는 나 vs 벌써 하고 있는 그 사람
그때 나는 설명서를 보면서 하나씩 따라가고 있었고, 그 사람은 벌써 하고 있었어요.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속도가 너무 차이 나니까 처음에는 그냥 내가 일을 못 배우는 건가 싶었어요. 그 사람은 한번 설명을 듣고 바로 해내는데 나는 다시 찾아보고, 틀리면 또 확인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일을 잘하는 것보다 내가 왜 이렇게 느린지를 더 보고 있었어요. 저 사람은 저만큼 하는데 나는 아직 이것도 못 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누가 저한테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자책하고 있었던 거죠.
그게 한두 번으로 끝났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몇 달 동안 마음에 남았어요.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또 비교하게 됐고요.
그런데 《총균쇠》를 읽으면서 그때 일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책을 읽기 전에는 결과를 보면 그 사람의 능력부터 생각했어요. 일을 빨리하면 잘하는 사람이고, 늦게 하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내가 놓친 게 있더라고요. 결과는 잘 보면서 그 결과가 만들어진 조건은 잘 안 봤어요.
그 사람은 비슷한 일을 예전에 해본 경험이 있었고, 나는 거의 처음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속도 차이가 날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그 사람을 비교했던 거예요. 그래서 내가 부족하다는 결론까지 너무 쉽게 갔던 것 같아요.
2 — 총균쇠가 찌른 것, 다른 조건을 같은 선에 세운 비교
《총균쇠》를 읽으면서 제일 찔렸던 건 아마 이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애초에 다른 조건에서 시작한 사람과 나를 같은 선에 세워놓고 비교하고 있었다는 것.
그때는 정말 같은 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회사에 있고,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꼭 같은 출발은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전에 비슷한 일을 해본 적이 있었고, 나는 처음이었어요. 그 차이가 있는데도 나는 그걸 거의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지금 누가 더 빨리 하는지만 봤어요.
그러다 보니 별것도 아닌 일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어요. 일을 하다가 그 사람이 먼저 끝내는 걸 보면 괜히 기분이 가라앉았고, 집에 와서도 '나는 왜 이렇게 느리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 사람이 나를 경쟁 상대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그냥 자기 일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나는 혼자 그 사람을 기준으로 나를 계속 재고 있었던 거죠.
그때는 그게 나만 뒤처지는 느낌으로 이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기도 해요. 내가 실제로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그걸 찾아서 고치면 되는 건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보다 느리다는 사실 자체를 내 능력의 문제로 만들어버렸어요.
《총균쇠》를 읽으면서 환경이나 조건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니까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났어요. 거대한 문명의 이야기를 읽다가 회사에서 설명서를 보고 있던 제 모습이 떠오른 게 좀 이상했어요.
물론 책에서 말하는 조건과 제가 회사에서 겪은 일을 똑같이 볼 수는 없어요. 그래도 하나는 비슷했어요.
나는 그동안 사람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는 잘 안 보고,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만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람을 부러워했던 것보다, 그 사람과 나를 같은 선에 세워놓고 혼자 자책했던 게 더 아쉽게 느껴졌어요.
3 — 비교가 사라진 게 아니라, 오래 끌고 가는 시간이 줄었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비교하는 마음이 없어지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누군가가 나보다 빨리 하는 걸 보면 순간적으로 '나는 왜 이렇게 늦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비교를 오래 끌고 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한번 비교하기 시작하면 계속 이어졌어요. 저 사람은 잘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 나는 뭘 잘못하고 있지,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생각이 점점 커졌어요.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별것도 아니었던 일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어요.
지금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 내가 또 비교하고 있네.'
그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조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그 생각을 사실처럼 받아들였어요. '나는 늦다'고 생각하면 정말 내가 뒤처진 사람인 것처럼 느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지금 내가 저 사람하고 나를 비교하고 있구나'라고 한번 구분해서 봐요.
그러면 그다음에는 그냥 제 할 일로 돌아가려고 해요.
물론 매번 잘되는 건 아니에요. 어떤 날은 또 비교하고, 괜히 기분이 가라앉기도 해요. 저도 아직 그런 게 있어요.
다만 예전에는 비교한 뒤에 몇 시간씩 생각했다면 지금은 조금 있다가 정신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비교 횟수가 크게 줄었다기보다는 그 생각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게 오히려 현실적인 변화예요.
누군가보다 빨리하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지금 어디에서 시작했고 뭘 하고 있는지를 다시 보는 쪽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그리고 또 비교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예전처럼 그 생각을 계속 따라가지 않고 그냥 하던 일을 다시 봐요.
'아, 내가 또 비교하고 있네' 하고 알아차리면 제 할 일로 돌아온다.
예전에는 비교가 시작되면 그 사람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보려고 해요. 누가 나보다 앞서 있는 건 그대로여도, 그걸 가지고 하루 종일 나를 자책하지는 않게 됐어요. 지금은 그냥 내가 시작한 자리에서 조금씩 해보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