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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다성부 서술, 구조적 소외, 존재 인정)

by 책읽기 프로젝트 매니저 2026. 6. 20.

투명인간

 

 

회의실에서 늘 마지막까지 남아 정리를 하고, 부당한 업무 분배에도 별말 없이 받아내는 동료가 한 명쯤은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그런 동료 옆에서 오래 일했으면서도, 그 침묵을 그냥 '괜찮은 사람'의 성격으로 읽어버렸습니다.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을 읽고 나서야 그 침묵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만수는 왜 말하지 않는가 — 다성부 서술이 드러내는 구조적 소외

〈투명인간〉은 2014년 성석제 작가가 출간한 장편소설입니다. 주인공 김만수는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살아온 인물인데, 소설의 첫 장면부터 그는 고글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한강 다리를 달리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일상복만 눈에 보일 뿐,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형상입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형식입니다. 서른 명이 넘는 주변 인물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만수에 대해 증언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른바 다성부 서술(polyphonic narrative) 구조입니다. 여기서 다성부 서술이란, 단일한 화자 대신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교차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서술 방식을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주인공 만수 본인은 단 한 번도 직접 화자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이 구조를 파악했을 때,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소설의 주제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수는 평생 남을 위해 살아왔듯, 소설 안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직접 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구조적 소외(structural marginalization)는 만수 한 명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조적 소외란 특정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자체가 특정 사람들을 비가시적 존재로 만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군사독재 시절 고문을 겪으며 가치관이 무너진 동생 석수, 부모에게 버림받고 자폐와 따돌림 속에서 자란 태석 — 이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투명인간입니다. 소설이 그리는 것은 베트남전 파병, 군사독재, 연탄가스 중독, 학교폭력,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심화된 빈부격차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의 초상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제목만 보고 SF 소설인 줄 알고 집어 들었거든요. '투명인간'이라는 단어에서 자연스럽게 H.G. 웰스를 떠올렸고, 그 선입견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는 첫 챕터를 채 다 읽기도 전에 알게 됐습니다. 이 소설에서 투명인간이란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던 야만의 시대가 만들어낸 존재들이죠.

소설이 말하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개인의 성실함만으로는 구조적 불운을 이겨낼 수 없다
  • 투명인간은 한 명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집합적 현상이다
  • 작가는 해답을 주지 않는다 — 판단은 철저히 독자의 몫이다

침묵을 다르게 읽기 시작한 날 — 존재 인정의 힘

이 책을 덮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팀 내에서 늘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동료에게 먼저 의견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방식을 바꿔서요. 기존에 제가 쓰던 "이 방식이 괜찮으세요?"라는 질문은 사실 확인 요청에 가깝습니다.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로 짜여 있죠. 그래서 "이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른 의견이 있다면 듣고 싶어요"로 질문을 바꿨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한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몇 번 반복하자,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업무 프로세스의 비효율에 대한 솔직한 피드백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은 의견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해도 된다는 신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여기서 생각하게 된 개념이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입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팀 안에서 의견을 내거나 실수를 인정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구성원들의 믿음을 말합니다. 구글이 2016년에 발표한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 연구에서, 고성과 팀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심리적 안전감이 꼽혔습니다(출처: Google re:Work). 만수가 자기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없었던 소설 속 상황과 제가 목격한 팀 안의 침묵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수의 비극이 증폭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려 했다는 데 있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약함의 신호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업무에서 과부하가 걸릴 것 같은 시점에 미리 상황을 공유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하게 혼자 해내는 것보다, 적절한 시점에 도움을 구하는 것이 더 건강한 책임감이라는 사실을 직접 겪어보니 분명해졌습니다.

한 가지 더 실천하게 된 것은, 눈에 띄지 않게 기여한 사람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호명하는 것입니다. 회의나 프로젝트가 끝난 뒤, "이번에 OO 씨가 자료 정리를 맡아줘서 전체 흐름이 잡혔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의식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습관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누군가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지 않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국내 직장인의 인정 욕구와 이직 의도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구성원이 조직 내에서 존재감을 인정받는다고 느낄수록 이직 의도가 유의미하게 낮아진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사라졌으나 여전히 우리 곁에 살고 있는 모든 만수들을 위한 찬가 — 저는 이 소설을 그렇게 읽었습니다. 성석제 작가가 답을 주지 않았듯, 이 글도 결론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책을 덮은 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 "나는 혹시 누군가를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붙들어본 사람의 태도는 그렇지 않은 사람과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묵직하지만, 꼭 한 번은 만나야 할 소설입니다.


참고: Google re:Work, 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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